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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철 Jong Choi Apr 18. 2022

청와대 봉황의 운명

세상을 여는 잡학

한국 정부의 최고위 직책은 당연히 대통령이요, 그 집무실이 있는 곳은 청와대이다. 청와대를 상징하는 것으로는 푸른 기와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금빛 봉황을 들어야 한다. 봉황 문양은 1967년 대통령 표장(標章)에 관한 공고가 제정된 이래 현재까지 대한민국 국장(國章)으로 사용되고 있다. 청와대 입구 철문부터 봉황이 매달려있고 대통령 집무실 벽에도 웅장한 봉황 두 마리가 마주 본 채 부착되어있다. 그 외에 관저와 대통령이 참석하는 장소, 전용 항공기 자동차 기차 등에 봉황을 새긴다. 대통령이 주는 임명장과 상장 등에 봉황 표장이 들어가고, 청와대에서 나가는 온갖 기념품도 봉황으로 장식한다. 건물 밖 분수대 꼭대기에 봉황 한 마리가 위풍당당 앉아 있기도 하다.


<삼족오는 기원전 5천 년~3천 년 동안 황하 중류 지역에 존재했던 양사오(仰韶)문화와 은허의 토기 등에서 볼 수 있는 동이족의 또 다른 신조(神鳥)이다. 각저총 고분 벽화에는 삼족오 오른쪽에 피리 부는 신선이 봉황을 타고 있다. 사진 위키백과>


수컷 봉(鳳)과 암컷 황(凰)을 합친 이름의 봉황은 동북아시아를 호령했던 동이족의 상상 속의 새로 모든 새의 우두머리다. 봉황은 고대 중국인들이 만들어낸 상상조(想像鳥)가 아니라 동이족 고유의 신조(神鳥)다. 『산해경(山海經)』 <남산경(南山經)>에, “동쪽으로 5백 리를 가면 강물을 남쪽 발해로 흘리는 단혈산(丹穴山)이 있고 그 산에 닭과 같이 생기고 오색으로 몸통이 채색된 새가 있으니 봉황이라 한다. (중략) 먹는 것이 자연과 같으며 스스로 노래하고 춤을 춘다. 사람 눈에 뜨이면 천하가 태평하게 된다.”라고 쓰여 있다. 산해경은 하나라 혹은 은나라 때에 쓰였다고 하나, 하나라는 역사적 실체가 없는 나라로 이야말로 중국인의 상상국(想像國)이다. 따라서 온갖 유물을 남겨 실체적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동이족의 은나라 때 쓰인 책으로 보는 것이 정답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동이족의 산해경’을 키워드로 삼아 ‘동쪽 5백 리’의 출발지를 찾고, 발해 위쪽에 위치하면서 강을 남쪽으로 내려 발해에 들게 하는 지역을 찾으면 봉황의 고향 단혈산이 어디인가 하는 퍼즐이 풀어진다. 고대 동이족의 중원 땅에서의 주요 활동 지역은 산둥반도와 허베이성 일대였다. 이중 발해를 남쪽으로 보는 곳이라면 산둥반도가 아닌 허베이성 쪽에서 ‘5백 리의 출발점’을 찾아내야 한다. 허베이성의 중심지는 베이징이다. 이곳을 기점으로 현재의 250km 정도로 추정되는 ‘동쪽 5백 리’ 지역을 짚어보면 발해 위쪽 내륙에 위치하는 곳에 청더(承德)가 나온다. 이곳에 루안허(灤河)라는 강이 시내를 관통하여 남쪽으로 흘러 발해에 들어가고 칭취펑(磬锤峰)이라는 영험스러운 산이 있다.


중국 청더시 칭취펑(磬锤峰). 사진 tuini.com


이로써 산해경의 단혈산은 이곳 청더의 칭취펑으로 비정할 수 있음이요, 옛 고조선 강역에 포함되는 곳이기에 봉황을 동이족 고유의 신조라고 단정할 수 있는 엄중한 근거가 되는 것이다.  


창덕궁 인정전 천정에 그려진 봉황도. 사진 서울시


고고려(古高麗) 때는 지도자의 무덤마다 봉황을 새겨넣어 고조선의 맥을 잇는 동이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각저총 벽화에는 해를 상징하는 삼족오 우측에 신선이 봉황을 올라탄 채 피리를 불고 있다. 고고려(古高麗)인들이 봉황을 영매로 삼아 삼족오를 향해 상천제사(上天祭祀)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외에도 한반도에 존재했던 모든 나라가 봉황을 품었다. 성군의 표징으로서 봉황을 앞세웠고 백성들 또한 부디 성군이 나타나 천년만년 태평성대 이어지기를 봉황에 의탁했다. 신라인들이 현실에서의 봉황 대체물로서 닭을 신조로 삼았음과 조선의 창덕궁 인정전 천정에 그려진 봉황도(鳳凰圖)는 그런 염원의 표식이라 할 수 있다.

    

천상과의 소통보다 중화 개념을 더 중히 여긴 중국인들은 새를 경외의 대상으로만 여긴 듯하다. 그들이 가장 높게 치는 새가 대붕(大鵬)이다. 발해에 사는 물고기 곤()이 변하여 된 새로 날개를 펴면 하늘을 덮었고 한 번 날면 9만 리를 날아 남쪽 바다로 간다는 내용이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 편에 담겨 있다. 일본인들은 사당 입구마다 도리이(鳥居. 새가 머무는 곳)’라는 신물(神物)을 세웠다. 도리는 ’, ‘돌아오는 것의 뜻을 갖는 옛 동이족 말이다. 철 바뀔 때마다 북쪽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철새는 동이족에게 천신을 만나고 돌아오는 존재로 보였기에 고대부터 이 땅에 세워진 신성한 소도의 솟대 꼭대기에 북방 철새 기러기와 오리가 천신의 전령으로 앉을 수 있었다. 그 솟대가 일본으로 건너가 도리이로 변형된 것이요, 그로써 일본에서도 새가 신성한 존재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일본인들에게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새 외에는 높게 모셔지는 다른 새들이 보이지 않는다. 까마귀 부리에 날개를 갖춘 개 형태의 카라스텐구와 검은 날개로 밤에만 날아다니는 밤 참새 요스즈메가 저네들 신화에 간혹 등장하나 토종악귀 풍년국 일본답게 둘 다 악귀이다. 이 중 카라스텐구는 인도의 가루라(迦樓羅. 혹은 가루다)가 건너가 변형된 유사체로 보는 학설도 있다.

가루라는 인도인들이 숭앙하는 우주의 수호자 비슈누 신이 전용으로 타고 다니는 새이다. 인간의 몸에 독수리 머리를 갖는다. 계급장 떼고 신들과의 대적도 불사하기에 신들은 오히려 기특하다 여겨 이뻐해 주었다. 금빛 날개로 날아다니기에 태양신의 지위도 부여받았다. 인도뿐 아니라 태국과 인도네시아에서 현재에도 국장(國章)으로 추앙받는 등 여전히 신적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가루라이다. 그런 가루라가 바닷물 타고 일본에 건너가서는 조난을 상징하는 악귀로 변했으니, 귤이 회수를 넘어 탱자 된 꼴이다.


고대 북유럽 서사시들을 담은 책 에다(Edda)의 17세기 필사본에 그려진 위그드라실(물푸레나무) 삽화. 꼭대기에 독수리가 앉아 있다. 사진 위키백과

 

서양인들은 불사조를 내세운다. 스칸디나비아반도 일대와 프랑스 독일 북부의 노르드(Nord) 문화권에서 13세기까지 구전되던 서사시를 망라한 책이 에다(Edda)이다. 이 책의 17세기 말 필사본에 불사조 삽화가 들어가 있다. 아홉 개의 세계를 이어주는 신성한 물푸레나무 위그드라실(Yggdrasill) 위에 불사조가 앉아 있는 삽화다. 그들은 이 불사조를 독수리로 여겨 오딘의 독수리로도 불렀다. 불사조는 우주 탄생에 맞춰 태어나고 우주 멸망 때가 되면 스스로 불에 타 재가 되었다가 곧바로 재 속에서 부활하는 것으로 새 우주를 연다. 그래서 불사조라 일컫는 것이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피닉스. 사진 영화장면 갈무리


이집트 왕을 수호하는 여신 네그베트. 사진 ancientegyptianfacts.com


아라비아 사막을 고향으로 삼는 피닉스(Phoenix)는 등급 떨어지는 불사조인지 고작 5백 년을 주기로 삼아 죽고 부활하기를 거듭한다. 피닉스는 이집트 신화에서 베누(Bennu)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나 신적 존재는 아니고 그저 병든 사람들에게 부활을 상징하는 길조(吉鳥)가 되어주기만 한다. 이집트 신화에서 신 대접을 받는 새는 따로 있다. 네크베트(Nekhbet)는 기원전 34백 년 무렵 선왕조 시대인 상() 이집트의 여신이었다가 2백 년 후 이집트가 통일되자 통일 이집트의 파라오를 수호하는 신으로 역할 변경을 하고 있다. 이 네크베트 외형이 독수리이다. 대기와 불을 상징하며 파라오를 수호하는 호루스도 있다. 여러 변형체를 갖는 호루스이지만 완전체를 보일 때는 매의 얼굴을 갖는다.     


3주 후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 그에 맞춰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이전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국민 절반 이상의 이전 반대 여론은 안보 환경 변화라는 현실적 비판을 말하는 듯하다. 그것은 그렇다 치고, 청와대 시대가 끝나고 새 대통령이 봉황들을 두고 떠난다면 그 많은 봉황이 이별 통보에 서운한 심정 되어 다시는 안 보마고 한국 땅 박차고 떠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옛 로마와 현 미국의 국장에 등장하는 하늘의 지배자 독수리가 제국주의의 야욕을 드러내는 것에 반해, 동이족의 신조 봉황은 성군의 현신과 태평성대를 기리는 고귀한 정신을 품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때 권위적임을 이유로 들어 청와대에서 봉황을 퇴출하려고 했음은 혹여나 ‘탈권위적’ 이미지 좀 얻을 수 있을까 공연히 우쭐거렸던 짓이요, 동이족 공동체 구심으로서의 봉황의 의미를 전혀 모른 소치다. 봉황은 한국인과는 영원무궁토록 함께 가야 할 운명이다. 새 대통령은 집무실 옮길 때 청와대 봉황들 잊지 말고 잘 건사하기 바란다. 그렇다고 봉황을 성군 인증인 것으로 착각하며 ‘王’ 흉내 낼 것 아니라, 그저 국민 떠받들고 국운 번영 이끄는 지혜로운 지도자가 되길 바란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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