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월 Sep 19. 2023

9일차

1부

9일차 1부 


7월29일(토)


벌써 일주일을 온히 넘기다니 스스로에게 대단하다.


오늘은 1시에 제이미 선생님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제이미 선생님은 오래전에 한국에서 필리핀 화상 영어를 하면서 만났던 대니의 선생님이시다. 대니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무슨 사정이었는지 수업을 길게는 못했던 기억이 있다. 새로운 선생님으로 바뀌고 얼마 되지 않아 대니의 생일이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대니에게 무슨 선물을 갖고 싶냐고 물었는데 대니가 제이미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거다. 아이의 스쳐 지나간 이야기였고 그 후 생일 얼마 전에 내가 제이미 선생님께 그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생일날 저녁, 갑자기 울리는 SKYPE 통화 연결음에 얼떨결에 전화를 받았는데, 제이미 선생님이었다. 왜 전화했냐고 물으니 대니의 생일이라서 전화를 하셨단다. 사실 영어를 거의 못하는 대니는 웃음으로 갈무리하고 나보고 이야기 하라면 얼른 대화를 건네주었다. 그렇게 나는 서너 마디 안부를 물었었다. 영어가 안되니 마음속의 고마운 표현이 잘 나오지 않아 어영부영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누군가 내 스쳐 지나간 말을 기억해 준다는 게 너무 고마워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인연이었는데 무려 5년이 지난 이곳 마닐라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사람의 인연이란 신기하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람은 이제 연락이 끊겨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데, 한낱 스쳐가는 인연이라 생각했던 누군가와는 얇은 인연의 끈을 계속 쥐고 있다. 나이가 들어 그런가 예전에는 호불호가 분명해서 관계를 맺기도 끊기도 자주 했는데 이제는 새로운 인연을 맺기도 힘들고 설상 마음에 썩 들지 않은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뭔가 이유가 있겠지 그냥 넘어간다. 늙어서 외로움이 많이 늘어서 그런 거 같다.(^^)


그녀에게는 한국에서 미리 연락을 했던 것은 아니고 마닐라에 도착해서 갑자기 생각나서 SKYPE로 채팅을 보냈는데 무척 반가워하며 우리를 만나러 보니파시오로 와준다고 한 것이다. 왕복 2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를, 필리핀의 특성상 교통편 또한 이만저만 성가신 일이 아니었을 텐데 단번에 만나러 온다는 소리에 또 한 번의 감동을 받았다. 어쨌든 오늘은 그런 날이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면.....


아침 루틴으로 선베드에 누워 한국에 있는 동생과 한참 오전 통화를 하고 숙소에 돌아왔는데 대니가 왜 이렇게 늦데 오냐며 짜증이다. 아침 먹고 헬스장을 가야 하는데 나 때문에 늦었단다. 내가 분명 제이미 선생님과 점심 약속이 있어서 오늘은 오전 헬스는 못 간다고 몇 번을 얘기했는데 자기 필요한 것만 기억하는 특수한 사춘기 뇌 덕분에 또 자기 멋대로 짜증을 내고 있었다. 오전에 여유를 부리다 약속 시간이 임박해서 부랴부랴 챙겨 문밖을 나섰는데 엄청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오늘부터 엄청난 큰 폭풍이 마닐라에 도착했단다. 열대 지방의 스콜 같은 잠깐의 소나기가 아니라 왠지 진종일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8일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