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추억은 기차 연착
드디어 타지마할의 날이다.
여전히 뜨거운 물은 뜨겁기만 해 수도꼭지로 찬 물을 번갈아 틀며 씻는다. 오랜만에 둘 다 샤워를 완벽히 마치고, 전날 밤 마스크팩을 한 말끔한 얼굴에, 새로 세탁한 티셔츠를 입으니 한국에서 갓 떠나올 때의 모습과 같다.
물론 우리는 한국에서부터 자유분방하게 왔기에 그렇다 해도 다른 여행객들의 행색을 따라갈 순 없었다. 여행객들도 사리로 멋을 내고 오는 곳이다. 우리는 깨끗하게 세탁한 담요를 돌돌 감고, 바지는 드디어 빨래를 한 알라딘 바지를 갖췄다는 정도다.
핸드폰을 든 남자가 전화번호를 달라며 따라온다. 굉장히 낮고 느끼한 목소리로 한글자 한글자 말하는 걸 들어보니 Don’t you want me? 였다. 바라나시에서 한국어로 키스가 뽀뽀가 아니냐며 따라오던 마약쟁이를 생각하며 안개 낀 타지마할로 들어갔다.
오전 11시인데도 안개가 짙다. 연한 상아색의 타지마할은 안개에 가려 근처까지 가야 보이는 수준이었다. 상아빛 건물이 햇살에 부서지는 광경을 기대한 황 씨는 적잖아 실망했지만 그 어떤 건물보다 조화롭고 부드러운 둥근 모양 지붕은 가까이서 볼 가치가 있었다.
원래 다음 행선지는 북쪽 사막 도시 자이살메르였지만 아그라 안개속에서 숨 쉬다보니 따뜻한 남쪽으로 도망치기고 싶어졌다.
미리 끊어둔 기차표를 모두 취소하고 다시 델리로 넘어간 후, 델리에서 남부 휴양지 우다이뿌르행 기차에 올랐다.
새벽에 가방 두 개씩 이고 걷는 우리를 기차역까지 태워준 따스한 인도는 잊은 지 오래다. 우리의 기차는 2번이나 취소되어 기약 없이 기다린지 6시간째다. 5분뒤에 도착한다는 기차는 또 2시간이 연착되었다.
인도 여행 초반에는 대기실 퀴퀴한 냄새를 견디지 못했다. 1분도 머무르지 못하고 춥든 밤이든 플랫폼에 쭈구리고 있었지만 이젠 대기실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초코렛도 먹는다.
새벽 3시부터 기다린 기차역에서 밤 10시 반에 델리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고, 다시 새벽 3시에 델리에 도착했다. 평소에 우리가 타는 기차는 SL 좌석이었다. 에어컨 및 난방 없는 침대 좌석으로, 창문을 닫아도 바람이 숭숭 들어와 한국에서 챙겨온 유리 테이프를 발라야했다.
이제 유리창 없는 창문은 이골이 났다. 에어컨 달린 3A로 비싼 값을 치른 좌석은 천국과도 같아 죽은 듯이 자고 일어났다.
방값도 상향조절 하였다. 1박에 700루피지만 넓고, 우풍 없이 따뜻하고, 드디어 적당한 온도의 물이 24시간 나온다.숙소 점검 조건을 조금 더 추가했다.
1. 휴지통이 제대로 갖추어 져 있는지
2. 창틀에 유리창이 끼워져 있는지
3. 온수와 정전과의 연관관계
부모님들은 모르는게 맘 편하실 정보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