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 최고의 사치
밤의 아그라의 안개는 무서울 만큼 짙어 내 운동화조차 보이지 않았다. 서로 떨어졌다가는 그대로 안갯속으로 사라져 버릴 공포로 황 씨 손 꼭 붙잡고 그나마 오르차보다 따뜻한 방을 600루피에 구했다. 온수를 언제든 쓸 수 있다고 하니 또 한 번 믿어보기로 한다.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은 가끔 외국 유학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여행이든 유학이든 외국서 적응하기 힘들면 맥도날드를 찾아가렴. 가격도 맛도 한국과 비슷한 그곳이 그렇게 위안이 되었단다. 먼데까지 가서 무슨 맥도날드를 찾고 있냐 생각한 과거의 나는 혼나야한다.
오르차에서부터 가이드북을 읽으며, 아그라의 피자헛을 간절히 원했다
피자헛 가기 전 날, 즉 오르차에서의 마지막 날 꾼 악몽 속에선 빨간 피자헛 간판이 이상한 회색빛으로 변하더니 음식 상태도 괴기스럽게 엉켰다. 인도 피자헛이 꿈과 다르길 얼마나 빌었는지 모른다.
방문 당일, 오로지 피자헛의 피자와 스파게티와 콜라에 대한 감상문으로 일기 두 장을 채웠다. 타지마할 감상문보다 두 배 더 길고 구구절절하다.
다행히 한국과 똑같은 빨간 간판과 자동문까지 달린 건물이었다. 기쁨에 차 문자 그대로 ‘달려들어’ 간 우리를 직원이 제지하며 부디 아직 오픈 시간 전이니 밖에서 대기해 달라고 했다.
매장은 우리 숙소보다 따듯했고, 앞접시, 포크, 나이프가 한국과 똑같은 방식으로 세팅되어 있는 것에 감격해 메뉴 한 줄을 다 시켰다. 복숭아 주스, 토마토 야채 푸실리 파스타, 치킨 스파이시 치즈바이트 피자에 치즈추가, 나중엔 그린 샐러드와 콜라도 3잔이나 추가.
갈릭소스와 피클은 없지만 대신 핫소스와 헤인즈 유리병에 담긴 케첩을 준다. 페퍼로니 대신 소시지를 올려주고, 치즈바이트의 바이트 부분은 향신료 냄새가 좀 나는 것 말곤 그리웠던 그 맛 그대로다.
한국 피자헛에서도 하지 않았던 사치의 대가는 800루피였다.
다음날 방문에 대해서도 상세히 기록해 두었다. 버섯크림파스타, 작은 옥수수 팬피자, 복숭아 주스, 콜라 정도면 첫날보다는 정신 차린 2인분 양이다. 팬 피자 도우는 우리나라 것과 많이 달랐다. 더 두껍고 튀긴 것처럼 퐁신퐁신한 것이 고로케와 비슷한 식감이었다.
이왕 피자헛까지 간 김에 사치스러운 날을 보내기로 약속하고 Costa coffee라는 대형 프랜차이점 카페를 갔다. 인도 여행 첫 카페와 한국에선 너무 당연해 눈에 띄지도 않는 천장형 시스템 난방 기구에 그간 앓던 것이 스르르 녹았다.
초콜릿 케이크, 따뜻한 카페모카, 핫초코, 30루피나 하면서 아주 조금 떠 주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스쿱은 어릴 때 자주 먹던 엑설런트 아이스크림 파란색과 꼭 같은 맛이었다.
숙소에 오니 벌써 오후 5시이다. 정전으로 방이 컴컴했다. 4층 옥상에 올라가 밀린 일기를 쓰는데 우리 숙소 옥상에서 타지마할이 정면으로 보인다.
게다가 건물 바로 밑은 빼곡한 주택가여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기는 곳이었다. 옥상 모퉁이에는 원숭이 5마리가 줄지어 걸어가고 있었다. 건너편 옥상 원숭이는 널어둔 빨래를 한참이나 만지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