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소리
차가운 옥수수차에 보리 섞은 밥 훌훌 말아 올린 잔멸치볶음은 우리집 여름 제철 밥상이었다.
언뜻 보면 개밥 모양이지만 구수하고 짭쪼롬한 물밥에 총각 김치만 하나 더 꺼내도 여름 주말 아침으로 뚝딱이었다.
부산은 산을 깎다만 오르막길에 학교와 아파트 단지를 도미노 놓듯 배열해두어, 꼭대기 단지에 가려면 입구부터 경사각 30도 이상의 길을 15분씩 걷는게 흔한 일이었다.
평지 대단지 아파트에 살다 우리집에 놀러온 친구 중 하나는 한여름 아스팔트길을 등반하다 헛구역질까지 했다. 종내에는 허리가 굽고 두 팔이 무릎 아래로 내려온 상태로 기어오르는 모양이라 등산이 아닌 등반이라 부르는게 맞았다.
그래도 현관 안에 들어서면 다들 괜찮은 방문으로 여겨주었다.
옛날 아파트답게 넓게 빠진 거실과 베란다, 꼭대기 단지 13층 5호는 사방이 트여 8월 한여름 맞바람이 시원했다.
특히 우리집 자랑은 거실에 테레비전이 없단 거였다. 아무것도 없어 벽이 휑하지만 여름이면 널찍하게 마루바닥을 뒹굴 수 있었다.
방 3개와 부엌, 거실 어느 창문을 열어도 푸른 산과 나무가 그득했던 집.
땀을 쭉 뺐으니 무언갈 먹어야 하지만 거실에 널부러졌다. 배달 어플이란게 없던 시절이라 중국집이랑 양념치킨집 번호가 적힌 책자를 뒤적여야 한다.
그럴때 냉장고에서 옥수수차 유리병을 꺼낸다. 그대로 삼키면 뱃속이 저릿할만큼 차게 식은 차를 흰색 사기 그릇 자작하게 붓고, 밥은 딱 한 숟갈만 말고 볶은 잔멸치를 뿌리는거다. 구수한 냉국밥 훌훌 삼키며 식힌 몸은 여름 맞바람에 제법 서늘함을 느낀다.
그리고 나면 짜고 따뜻한 음식이 혀 밑을 싹 맴돌아 가스불을 켜 떡볶이를 해먹거나, 라면 끓여 또 밥을 말거나 짬뽕에 탕수육을 시켰다.
3분만에 삼키던 잔멸치볶음을 해볼랬더니 이게 애법 손 많이 가는 반찬이었다.
예열을 잘못하면 올리브유가 떡져서 멸치가 느끼해진다. 볶는 것도 아주 약불로 옆에 딱 붙어 계속 저어주어야 빠짝 타버리지않고 바삭바삭한 멸치가 되는 거다. 물엿 양 맞추기도 쉽지 않아 어느때는 너무 뭉쳐 딱딱하고 어느때는 너무 없어 훌훌 날렸다.
에어컨없는 여름 한 낮, 20분씩 후라이팬을 뒤적였준 엄마. 결국 퇴근길 반찬가게에서 산 볶음멸치는 너무 달아 이가 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