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건너뛰기
빨간 소쿠리 가퉁이까지 흰 소면이 수북했다.
멸치 대가리까지 팔팔 끓여 노랗게 우려난 국숫물도 대접 끝까지 퍼담았다. 계란 지단은 노른자 흰자 구분해서 부치고, 애호박에 부추 어묵볶음 오색 고명 꾹국 눌러 담은 모양이 잔칫날에 과히 부족하지 않지만 간단히 말은 국수는 금방 허기치기 마련이라며 연신 가스불을 세웠다.
국수를 양껏 먹는건 보통 엄마와 동생 쪽이었다. 엄마의 아버지, 내 모계쪽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잘생기기로 유명했더랜다.
상견례 후 시어머니가 예비 며느리를 따로 불러 이른말이 아버지가 참으로 잘생기셨다 였을 정도.
1920년대생 할아버지는 식욕도 식탐도 없어 평생 늘씬한 몸을 가졌다. 그 유전자는 이모, 엄마까지 잘 오다 나를 건너뛰고 동생에게 가버렸다.
열성인자는 우성인자보다 발현력이 약하다고 배웠던 것 까진 기억나는데 퐁당퐁당 건너뛰는 유전 요소들 중 무엇이 열성인지는 모르겠다. 랜덤뽑기처럼 억울하게 물려받은 것들이 있다.
엄마는 사랑니 네 개 모두 반듯하게 났고 아빠는 사랑니 네 개 모두 옆으로 누웠다. 대학병원에서 마지막 남은 사랑니를 뽑고 퉁실하게 부어오른 뺨을 부여잡은채 휴가 쓴 아빠 모습을 내가 이어받았다.
큰 딸은 아빠를 닮는다는 통설에 맞게 아빠 핏줄을 닮은 큰딸은 무얼 얼마나 먹었는지 붓기가 알려줬다.
국수 대접을 연달아 먹으면 고모들이 보이고, 한 그릇만 먹으면 그럭저럭 모계 핏줄 체형이 유지되어 한그릇으로 참았던 국수 그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