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퇴사를 했을까? - 여덟 번째(2)

퇴사 일대기

by HanaLim

서구인에 맞춘 의류였기에 패턴 형태도 많이 달랐고, 국내와 다르게 독특하고 다루기 어려운 원단들을 사용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수정 뿐이었다. 서구인 체형에 맞춘 패턴 제작은 내가 알고 있던 지식과는 달랐다.

새로 제작해야 하는 패턴이 많아지면서 투애니원은 전문 패턴사를 뽑자고 했고, 사장님은 받아들였다.



패턴사 채용 공고는 내가 하게 되었다.

평소 활동하던 패턴 카페에 글을 올렸고, 3~4개 정도의 이력서가 들어왔다. 다들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셨다. 첫 면접자는 가벼움이 느껴졌다. 아내가 해 보라고 해서 했다거나, 그동안의 경험도 야매로 한 경우였다. 두 번째로 본 면접자는 키가 크고 지긋하신 분이었다. 서구인 패턴을 주로 제작하셨고 패턴실 운영도 하셨던 분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분이 새로운 패턴사로 합류하게 되었다.


패턴사 분이 첫 출근하신 날, 한 장면을 잊지 못한다.

패턴다이 대신 높은 철제 판을 가만히 훑어보시다 무언가 결정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팔에 힘이 들어갔다. 잘해보자!라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리고 패턴사 분은 박수를 한번 치고 자! 뭐부터 하면 되죠? 비슷한 말을 했었던 것 같다. (기억이 잘 안 난다)

하지만 FM으로 일하는 곳은 아니었기에, 초반엔 일이 없다시피 했다. 작업이 없을 땐 패턴사 분은 감을 살릴 겸 연습 패턴을 떴다. 그때마다 나는 궁금해서 은근슬쩍 물어보거나 힐끔 쳐다보기 일쑤였다. 패턴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아시고 나에게 패턴을 가르쳐주었는데, 굉장히 쉬운 방법이었고 결과물도 잘 나왔었다. 깜짝 놀란 나는 어떻게 이렇게 뜨시게 됐는지 여쭤봤었는데, 이전에는 기계 설계를 했었고 난이도가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옷 패턴은 그것에 비하면 너무 쉬워서 더 강구하다 보니 자신만의 방식을 찾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은 그 방법을 적은 노트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있을 수도 있다, 패턴에 관한 건 거의 다 가지고 있으니) 지금 생각해도 굉장히 센세이션 했던 설계법이었다.




본격적으로 투애니원에서 작업지시서들이 날아왔다. 패턴사 분은 분주해졌지만, 항상 여유 시간이 생길 정도로 굉장히 빠른 속도로 패턴을 뽑아냈다. 우리의 업무 순서는 재단 - 패턴 - 재봉이었다. 여기서 나의 역할은 재단이었다. 하지만 패턴을 워낙 빠르게 뽑아내셔서 재단 속도가 따라가기 힘들어졌다. 그래서 샘플사, 패턴사 분이 재단을 도와주시는 경우도 있었다.

하나둘씩 완성된 옷들은 모두 깔끔하게 나왔다. 나는 앞옆뒤 각각 찍어서 메일로 전송했고, 투애니원은 사진을 토대로 옷을 확인했고, 수정이 필요한 것은 메일로 수정 사항을 보냈다. 마음에 드는 것은 바로 옷 샘플을 보내라고 연락했다.

일사천리처럼 보였던 우리의 작업은 점차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투애니원에서 트집을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눈에는 완벽하게 잘 나온 샘플들이 언제부턴가 보내지지 못했다. 수정 사항이 이어졌고, 1cm에 대한 수정 요구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모든 샘플에 대한 수정 사항이 넘어오기도 했다. 참다못한 패턴사, 샘플사 분은 납득이 안 돼서 메일을 보여달라고 했다. 메일을 보신 두 분은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을의 입장인 우리로써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최대한 원하는 대로 맞춰보자며 의기투합할 수밖에 없었다. 문화가 다르니까, 그 생각 하나로 우리 나름대로 수정을 해서 보내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3~4번 정도 수정을 하게 되면 그냥 샘플을 보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단순히 힘 빼기 트집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수정을 해도 원하는 것처럼 나오기 힘든 상황이 왔다.

패턴사, 샘플사 분은 피드백대로 수정을 하면 오히려 샘플이 망가진다고 했다. 고민하던 우리는 왜 안되는지에 대한 이유를 메일로 보내기로 했다. 패턴사 분은 나의 옆에 앉아서 그대로 보내라며 메일 내용을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로 적어서 전송했다.


다음 날, 이메일을 연 나는 굉장히 화날 수밖에 없었다.

내용은 대략 '누가 갑이고 을인지 기억해야 한다', '너희는 을이니까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 '의견이나 토를 달지 말라'는 등의 어색한 문장들이 직설적으로 적혀있었다. 어떤 글씨는 초록색이고 어떤 글씨는 굵은 빨간색이고, 또 어떤 것은 밑줄도 쳐져있는 등 말 하나하나가 강조되어 있었다.

굉장히 노골적으로 노예 취급을 하는 것이 느껴져 불쾌감이 상당했다.

상당한 충격과 분노를 느낀 나는 바로 사장님에게 갔다. 그리고 더 이상 이메일 업무는 못하겠다고 발언했다. 무슨 일이냐며 모인 사장님을 포함한 직원들은 내용을 보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장님은 씁쓸해했고 패턴사 분은 역정을 냈다. 말도 안 되는 요구를 어떻게든 맞춰보려던 것이 결국 터졌다. 사장님은 자신이 잘 말해보겠다며 수습했고, 나는 분을 삭이기 위해 심호흡을 했다.


며칠 뒤, 투애니원의 이메일 담당자가 잘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빈자리는 새로운 직원 대신, 대행사 사장님이 직접 하게 되었다. 그에 맞춰 우리 쪽 이메일 담당자도 사장님이 되었다.




샘플들을 보낸 양이 많았는데 생산을 진행하겠다는 이야기가 없었다.

이상함을 느낀 패턴사 분은 사장님에게 틈틈이 상황을 물었다. 그럴 때마다 사장님은 기다리자고 했다. 하지만 시일이 지나도 변함이 없자, 그제야 사장님도 이상함을 느끼고 좀 더 적극적으로 투애니원에게 물어본 듯했다.

그 덕분인지 드디어 첫 생산을 받게 되었다.

인맥도 지식도 없던 사장님은 몸으로 뛰어다니며 우여곡절 끝에 공장 하나를 계약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사장님과 남직원은 사무실보다 공장에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어느 날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모든 직원들이 공장으로 가게 됐다.

지하에 위치했던 그곳은 재단, 봉재, 포장까지 모두 다 하는 곳으로 꽤 넓었다. 우리는 각각 흩어져서 4시간 정도 작업을 도왔다. 나는 포장을 도왔는데 손이 빠르다며 칭찬을 들었다. 그리 기쁘지는 않았다.


작업이 끝나자, 사장님은 사무실로 데려다주겠다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했다. 가는 도중 사장님은 다림질을 하는 남자분에게 좀 더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등의 말을 했다. 그에 대한 남자분의 대답은 전문 용어가 대다수였다. 사장님은 그게 무슨 뜻이냐며 자신이 이 일을 해본 사람이 아니라서 잘 모른다며 머쓱해하며 물어봤고, 조금은 짜증과 귀찮음이 섞인 말투가 답변으로 왔다. 그에 대한 사장님의 대답은 끝까지 착실하게 잘 부탁드린다는 말이었다.


옆에서 본 나는, 공장 사람들이 사장님을 밑으로 보는 것 같았다. 당시 나는 사장님이 너무 순하다고 생각했다. 스스로의 약점을 그대로 말했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기가 센 공장 사람들의 눈에는 자신이 잘 모른다며 헤헤 거리는 사람이 얼마나 약하고 우스워보일까 싶었다.

사장님은 옛날처럼 착실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하면 사람들도 잘해주고 마음의 문을 열어주고, 이것저것 알려주고 그럴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당시의 나는 이 업계를 너무 허수로 생각한다는 것과 동시에 사장님이 너무 드라마 감성에 의지하기 때문에 무시와 홀대를 받는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어리고 여자애라서 패션 업계에서 은근한 무시 하거나 깔봄을 당했던 경험이 여럿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강한 척을 하거나 당당하게 걸어 다니는 게 습관이 되었다. (실제로도 은근 기가 있기는 하다 - 이것도 퍠션업계 덕분에 만들어진 걸까?) 그래서 사장님이 불쌍하다기보다는 이 업계에 대해서 너무 공부를 안 하고 뛰어든, 안일함이 크다고 생각되었다.


(내용이 길어서 다음 화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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