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퇴사를 했을까? - 여덟 번째(1)

퇴사 일대기

by HanaLim

텍스타일을 하던 나는 다시 패턴을 하기로 했다.


입사하게 된 샘플실은 의정부 지하철 거의 끝에 있었다.

텍스타일에서 이름을 날렸던 사장님은 샘플 같은 패션 기업은 처음이었다. 본업 그대로 원단 관리나 텍스타일을 하던 사장님에게 투애니원(업계 내 브랜드 지칭어) 대행사와 전담 샘플실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으로 시작하게 된 케이스였다.

(이야기만 들었을 땐 운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투애니원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생각이었다.)


그래서인지 사장님은 패션 업계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

공부를 하면서 준비를 하기보다, 직접 경험하며 부딪히는 타입이기에 더욱이 사전 지식이 없었다. 마치 일본 청춘 만화나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같은 캐릭터였다.




회사는 나를 포함하면 4명이 되는 소그룹이었다. 막 시작하는 단계였기에 당연했다.

사장님 옆에는 이사님과 남직원이 1명씩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단연 젊은 남자분이었다.

남자분 역시 텍스타일 학원 수강생이었다. 이전 회사에서의 경험처럼 같은 학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자 무언가 동질감과 내적 친밀감이 미약하게 피어났다. 남자분은 언젠가 자신의 브랜드 사업을 하는 것이 꿈이었고, 사장님이 텍스타일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여 함께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사장님이 텍스타일 원장님에게 이야기를 한 것일 수도 있고, 또 마침 내가 회사를 나왔기에 원장님이 나에게 말한 것 같다.

인연이란 게 참으로 신기하다. 텍스타일로 시작했지만, 패션 기업에서 함께 하게 되니 말이다.


이사님은 연세가 좀 있어 보였다. 적은 수의 흰머리가 희끗희끗했고, 느릿한 행동과 말을 구사했다. 물건을 깜빡하고 놓고 올 때도 있어서 사장님은 어떤 업무를 신신당부를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알았어, 하며 기가 죽은 이사님을 보는 건 측은 심을 들게 했다.

이사님은 나를 예뻐해 주셨던 것 같다. 따님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동물과 인간에 대한 경계가 매우 뚜렷한 분이기도 했다.




첫 출근 날, 텍스타일 학원 수강생이 새로 직원으로 온다는 소식에 젊은 남자분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분은 학원을 다닌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주 가끔씩만 학원에 연락을 하는 모양인지, 원장님 안부 등을 물었다. 이사님은 칙칙한 분위기가 산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무실은 넓었다. 원단을 보관할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사장님이 과감하게 넓은 곳으로 계약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공간의 크기가 필요 이상으로 넓었다. 사장님을 위한 공간을 따로 만들어도 한 공간이 더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직원으로서는 먼지에 둘러싸이지 않아도 돼서 만족도가 높았다.




본격적인 업무를 위해 샘플사 채용이 이뤄졌다. 며칠 후 소개의 소개로 샘플사 어머니 1분이 오시게 되었다.

샘플사 분은 평범함이 가득한 분이셨다.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일이 없으면 가져온 간식을 먹거나 사무실 정리를 하셨다. 말투도 조용하고 약간 느린, 으레 익숙함이 많은 아주머니였다.




투애니원은 미국 기업으로 고객도 미국, 협력사도 미국 기업이었다.

새로운 직원이 입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협력사는 직접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스카이넷으로 화상 통화를 했다. 나의 옆에 사장님이 있었지만 진짜 사장님은 화면 속의 사람처럼 느껴졌다. 화면 속 여성은 착해 보인다며 미소를 지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끝이 났지만 단 한 번도 인상이 좋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는 분이었다.



업무는 어렵지 않았다.

협력사와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부터 시작했다. 교포였던 협력사 사장님은 한국어를 잘했지만, 이메일 담당자는 미국인이라 번역기를 사용한 듯 어색한 문장이 많았다. 그래도 소통에 어려움은 없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샘플 원단을 동대문에 찾으러 가거나, 협력사에서 보낸 패턴을 수정, 재단하는 것이 주 업무가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직원들은 외근이 많아져 회사에는 나 혼자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당시 아무도 없는 넓은 사무실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햇빛을 받으며 패턴을 만지는 시간은 행복이었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경기도 오산이었다.


(길어서 다음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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