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취업과 직업 사이 Oct 30. 2023

중학교 1학년 중국으로 가다

진짜 무슨 생각으로 갔을까

나의 모든 인생을 한번에 다 적기엔 너무 길 것 같으니, 중학교 시절부터 적겠다.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의 큰 터닝 포인트는 중국 유학 아니었을까?


한국에 있었을 때도 이사는 많이 다녔다. 나라를 옮기는 건 상상도 못 했는데, 어쩌다 보니 중학교1학년 중간고사를 마치고, 중국 추운 지역으로 유학을 갔다.


정말 정말 나를 유학 보내주신 부모님의 결단력과 희생에 너무 감사하다. 이 마음이 취업 전까지 제일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하여간, 중국 유학을 한 마디로 하면 "군대"다. 무슨 학교가 이렇게 힘들까.


6시에 기상하고 체조를 한다 그리고 아침을 먹고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공부를 해야 한다. 그리고 고작 저녁 10시까지 한 시간 개인 시간이 주어진다.


겨울에는 마이너스 10-30도까지 내려가는 지역이었다. 좁은 한 방에 6명이 같이 있어도 히터가 잘 안 될 때면 너무 추웠다. 또한, 전자기기는 당연히 금지였고 사전도 종이 사전만 사용 가능했다.


한 달에 2번 정도 외출이 가능했다. 그 시간만이 유일하게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었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한달 동안 채소만 먹는 이상한 식단 프로그램도 진행했었다. 정말 탈출하고 싶었다.


군대 같은 학교는 정치도 있었다. 어린 학생들이었지만 라인이 있었고 선생님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을 했다. 선생님에게 잘 보이면 학교가 대표하는 공연단이나 단체에 소속될 수 있었다. 그 정치 속에서 당연히 학생들 사이에 갈등은 있었고 선생님과 대립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그 환경 속에도 나쁘지 않게 생활했다. 좋은 친구를 사귀고 은근히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일찍이 남자들만 사는 기숙사에서 "사회생활"을 배우니 싹싹함은 나중에 큰 무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첫 유학 중국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레슨은 마음 가짐이었다.


힘들었지만...


환경이 어떻든, 유학은 돈이 많이 들었다.


한국에 있었어도 과외나 학원은 갔을 것이나, 유학은 정말 돈이 많이 들었다.


학교가 어떻든, 유학은 부모의 결단과 희생이 컸다.


중학생 1학년을 형이랑 단 둘이 외딴곳으로 보낸 부모의 마음은 그 무엇보다 무겁다. 또한, 그리운 마음을 견디는 것은 생각보다 끔찍한 고통이다. 하지만 부모님은 나랑 형을 중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내 마음이 어떻든, 유학은 책임이 따랐다.


어린 나이에 놀고 싶어도 유학은 공부가 목적이었다. 부모님의 희생과 결단 그리고 그에 따른 경제적 비용은 요구되지 않는 책임이 되었다. 어느 누구도 나보고 공부하라고 강요는 하지 않았지만, 유학이 수반하는 무게감은 나에게 요구되지 않는 책임을 주었다.


계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부모님의 희생과 결단이 마음 한편을 차지했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했다. 그리고 증명해야 했다. 혼자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정신적으로 많이 싸웠다.


유학을 즐기고 싶었다. 많이 놀 순 없어도 자유를 바랐다. 군대 같은 학교에서 벗어나고 너무 싶었지만 나는 유학생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과 마음가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이 마음가짐은 결국엔 중국 학교에서 전교 3등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2년 정도 중국에 있다가 태국으로 유학을 갔다. 좋은 이유로 옮기진 않았다. 정말 태국으로 가기 싫었다. 군대 같았지만 전우애를 쌓은 친구들이 많았고, 정도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중3밖에 아닌 나는 선택지 따윈 없었다.


중국에서 나온 이후 바로 일주일 후에 정말 작은 기대만 가지고 태국 비행기에 올라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