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리뷰
어느해나 마찬가지라곤 하지만, 2020년은 뭔가 유난히 화제의 곡들이 많이 등장했다는 느낌이 드는 해였습니다. 일단 K팝 사상 최초로 빌보드 Hot100 1위에 오른 방탄소년단의 'Dynamite'가 발매된 해이고,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걸그룹' 블랙핑크의 첫 정규앨범 'The Album'이 발매된 해이기도 합니다. 또 '원톱솔로가수' 아이유와 방탄소년단의 슈가가 만난 '에잇'도 있었고, 유재석과 이효리, 비가 결성한 싹쓰리가 데뷔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외에도 각종 1위에 오른 곡들을 일일히 따지면 손으로 셀 수 조차 없을 정도죠.
이처럼 임팩트 있는 곡들이 수두룩하게 쏟아진 20020년이었지만 만약 누군가 저에게 2020년 베스트송을 딱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없이 꼽는 곡이 바로 (여자)아이들의 '덤디덤디'(Dumdi Dumdi)입니다. 트로피컬의 흥겨운 사운드를 기반으로 매끈하게 잘 빠진 훅, 찰지게 달라붙는 랩과 벌스,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킬포인트, 그에 딱 맞게 나온 안무까지 정말 (제 기준에선)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 곡이 바로 '덤디덤디'(Dumdi Dumdi)였거든요. 지금도 여전히 '덤디덤디'(Dumdi Dumdi)는 여름 걸그룹 음악중 '역대급' 반열에 올려도 전혀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여자)아이들에 대한 기대치도 엄청나게 떡상했는데...
뭐 잘 알려졌다시피 이듬해 멤버 수진의 학폭 의혹이 발생하면서 (여자)아이들은 반강제적으로 활동을 중단해야했고, 설상가상으로 최근에는 소연이 표절논란에 휘말리면서 (여자)아이들에 대한 기대치는 어느새 바닥을 기게 되었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들은 악재가 겹친 와중에 꽤나 과감한 선택을 하는데, 일단 수진의 거취를 팀 탈퇴정도로 마무리하는게 아니라 아예 계약을 해지하고 회사에서 내보냈으며, 컴백곡도 디지털 싱글로 간을 보는게 아니라 그냥 냅다 정규앨범으로 질러버린거죠.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I Never Die'입니다. 'I Never Die'는 제목 그대로 '나 안죽었어'라고 패기있게 외치는 앨범입니다. 그게 자기들만의 자존심인지 진짜로 다들 수긍할만한 것인지는 그 다음 이야기고, 우선 그런 각오를 가지고 나왔다는 걸 드러낸거죠.
아무튼 성적상으로는 그 각오가 통한 것 같습니다. 타이틀곡 'Tomboy'가 각종 음원차트 상위권에 안착했고, 유튜브 조회수도 4일만에 3000만뷰를 돌파한걸 보면요. 다만 음악적으로 보자면 약간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긴합니다. 타이틀곡부터 대부분의 곡이 다소 뻔한터라 신선한 맛이 떨어지고, 정규앨범 치고 트랙들의 구성도 느슨한 감이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죽지 않았구나'라고 느끼고 이 앨범을 추천드리는 이유는 결국 소연의 재능입니다. 컴백을 앞두고 이런저런 구설수도 있었지만, 트렌드를 재빨리 캐치해서 그걸 자기들에게 알맞게 재단하는 능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요.
'I Never Die'에서도 이를 십분 발휘해 'Tomboy'에서는 얼터너티브록을, '말리지 마'에서는 팝펑크를 댄서블하게 완성해 놓았죠. 재능이 있다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못해도 평작, 조금 잘해도 수작이란 소리를 들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물론 늘 새로운 걸 찾는 창작의 영역에서 영감이나 재능이 언제까지 이어지는 건 아니겠지지만, 적어도 아직까진 소연의 재능은 차고 넘칠 정도로 풍부해 보입니다. 이건 당분간 소연과 (여자)아이들의 음악은 믿고 들어도 된다는 뜻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