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나의 삼수를 주제로 한 번쯤은 글을 써보고 싶었다.
그렇다. 나는 수능을 세 번 본 삼수생이었다.
삼수에 대한 인식을 보면 아마 수능을 본 적이 있는 자와 수능을 본 적이 없는 자로 나뉠 것 같다.
수능을 본 적이 없다면 삼수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마도 '공부를 못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이건 틀린 말은 아니다. 수능을 다시 결심하는 이유는 결국 자신의 기준에 비해 공부를 못했기 때문이다.
수능을 본 적이 있다면 아마도 '대단함.. 이 짓을 또 하다니..'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물론 최선을 다해 수능을 준비한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하지만 어떤 생각을 가지든 자신이 삼수생이 될 거라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나도 살면서 단 한 번도 심지어 만약에라도 내가 삼수를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우리 지역에서 가장 높은 내신 점수 커트라인을 가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비록 내가 그다지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조금 좌절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누군가 나 대신 내 삶을 살아주는 건 아니기 때문에 노력으로 갈 수 있는 곳까지 가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공부했고 쉬는 시간조차도 쪼개 썼으며 고등학교 3년 내내 주말을 온전히 쉬어본 적도 거의 없었다. 난 이게 통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만큼이나 노력을 했으면 내가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도 네가 잘 안 되면 누가 잘되겠느냐 말했을 정도로 나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노력은 나를 배신했다. ('노력의 배신'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나왔을 때 정말 오글거리는 말이라 생각했는데 그 말을 지금 내가 쓰고 있네..) 솔직히 재수 때까지는 괜찮았다.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이 재수를 결심했고 1년 동안 수능 공부에만 전념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무너진 건 재수를 망치고 나서였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이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좌절을 겪은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 때 인생의 전부를 한 가지로 설정하는 사람들이 어리석다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내가 그걸 공부에 쏟았다는 것조차도 알지 못했던 멍청이었다. 삶에 대한 의욕이 사라진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라는 걸 그때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회피를 선택했다. 하루종일 웹툰과 웹소설만 봤다. 집 밖에 나가지도 않았고 밥도 안 먹고 방에 틀어박혀 핸드폰만 붙잡고 있었다.
사실 재수 때 남아있는 힘과 멘탈을 모두 쏟았다고 생각해서 도저히 또 수능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너무 안타까워하셨고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해보라고 격려해 주셨다. (지금도 정말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나는 평생 부모님한테 잘해야 한다!!) 그래서 기죽은 채로 마지막 수능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사실 세 번째로 수능을 본다는 사실이 조금 창피하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지 않았기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공부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하지 않았는가? 공부를 하던 관성이 그래도 남아있어서 그런지 공부 자체는 힘들지 않았다.
문제는 정신적인 부분이었다. 조금 어이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시험을 통해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시험을 볼 때는 오로지 나 자신 뿐이기에 어쩔 수 없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구나를 파악했던 것 같다. 그래서 외롭지 않았다. 사람은 원래 혼자이기에 외로울 이유가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삼수 준비를 하면서 처음으로 외로웠던 것 같다. 나의 감정을 생각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게 너무 외로웠다. (결국 종교를 통해 최대한 이 감정을 내려놓으려고 했다.)
슬럼프가 와서 다 때려치우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삼수 일기'라고 이름을 붙인 노트에 내 지금 상황과 감정을 적었다. 미래에 이 노트를 볼 때 웃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깨알 같은 글씨로 글을 써 내려갔다. 그래도 마음이 잔잔해지지 않을 때는 전효진 변호사님을 생각했다. (변호사님의 자세한 스토리는 유튜브 영상으로 나와있다.) 그분은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 겁이 날 때면 슬럼프가 와서 계속 우셨지만 도망갈 곳이 없어서 다시 책상에 앉으셨다고 한다. '더 포기할 게 없어서 최선을 다했다'라는 말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나는 도망갈 수 있었고 그래서 도망갔다. 내가 나의 모든 것을 불태워버려서 더 이상 태울 것이 없다 생각했는데, 변호사님의 절박했던 상황을 들어보니 난 아직 더 타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이 나에게 정말 큰 힘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수능에 남은 미련이 없도록 철저하게 준비했고 그렇게 내 인생 마지막 수능을 봤다.
삼수를 한 것은 정말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도 꽤 많다. 스스로에 대한 자만과 오만을 내려놓는 겸손을 배웠고 마음이 힘들 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파악했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결국은 지나가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으며 밑바닥까지 찍었음에도 다시 일어났다는 경험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수능이 끝나고, 오랫동안 잠수를 탄 나를 정말 기쁘게 맞이해 주는 친구들을 보고 내가 정말 축복받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물론 나의 모든 상황을 함께 해주고 묵묵하게 응원하며 기다려준 가족들에게도 정말 고마웠다.
2021년은 나에게 절대 잊지 못할 해일 것이다. 나는 늘 미래에 계획들이 있었다. 하지만 세 번째 수능을 준비하던 때에는 처음으로 모든 것이 깜깜하게 느껴졌다. 이제는 그 경험이 내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별로 남았다. 바라는 바는, 앞으로 마주하게 될 깜깜한 상황들 속에서 그 별을 발견하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이 힘든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한 나의 모습이 결국은 또 저렇게 밝게 빛나는 희망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