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호>

좋은 사람이 될 거야

by 혜이


오랜만에 꽤 괜찮은 한국의 SF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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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는 2020년 때부터 기다려왔던 영화라 넷플릭스에 올라오자마자 봤다. SF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장르지만 한국에서 만든 건 사실 별로 안 좋아한다. SF는 공상과학 장르여서 현실에는 없는 배경 설정에 몰입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그 배경이 대한민국이 되고 한국말이 들려오면 아무리 몰입하려 해도 조금 어려운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호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은 배우들 때문이었다. 메인 등장인물인 송중기, 김태리, 진선규, 유해진 배우들은 모두 내가 굉장히 좋아하고 믿고 보는 배우들이다. 게다가 이들이 참여했던 SF영화는 없었기에 더 궁금했던 것도 있다. 맨 앞에 언급한 것처럼 결과적으로 <승리호>는 내가 생각하기에 꽤나 괜찮은 SF영화였다. 내용은 기존의 대부분의 SF에서 사용하는 "세상을 구하는" 클리셰와 한국이 좋아하는 "권선징악"의 클리셰를 벗어나진 않았으나 스토리의 개연성이나 SF에서 제일 중요한 그래픽 처리가 나쁘지 않아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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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의 배경은 우주이다. 물론 중간 중간 지구도 나오고 화성도 나오고 우주 정거장도 나오지만 대부분의 사건은 까만 배경의 우주에서 이루어진다. 지금껏 봐왔던 한국의 SF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이러한 광활하고 다양한 배경의 스케일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배경을 한정되게 국한시키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한국의 SF와는 다르게 수월하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승리호>를 보면서 우주의 그래픽뿐만 아니라 우주선 내부의 공간 구조와 소품, 각 인물들의 개성 있는 캐릭터를 나타내 줄 수 있는 복장이나 액세서리 등등에 신경을 많이 쓴 것이 느껴졌다. 다만 조금 아쉬웠던 것은 화성의 그래픽 처리였다. 오염된 지구와는 상반되게 무균실과 비슷한 분위기를 나타내고 싶어서 인위적으로 표현한 것 같았지만 다른 공간들에 비해 좀 구체적으로 보이지 않아서 균형이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승리호>는 SF의 상징이 되는 요소들을 생동감 넘치는 연출과 더불어 섬세하게 드러낸 것 같아 SF 팬으로서 흡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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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영화를 보면 상황이나 설정한 밑밥들은 다르지만 대부분의 스토리 개연성은 비슷하다. 지구가 오염되는 설정, 누군가가 위험에 처해서 주인공이 영웅이 되어 누군가를 구하는 설정, 목숨 걸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두가 해피엔딩인 설정 등등은 아마 SF영화를 좀 본 사람이라면 매우 익숙한 전개일 것이다. 이러한 클리셰들은 진부하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안 먹히는 건 아니다. 똑같은 레퍼토리지만 그것 또한 SF영화의 하나의 특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승리호>도 마찬가지이다. 우주 쓰레기들을 처리하면서 살아가는 소위 말해 하위계층인 승리호의 선원들은 현상수배에 올라와 있던 아이를 발견하게 되고 거래를 하려 하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를 죽이고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기득권들의 음모를 알게 된다. 승리호 선원들이 아이와 지구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우는 것이 <승리호>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모든 영화가 그렇듯 약간의 코미디와 약간의 철학적인 질문들을 적절하게 섞어가면서 내용을 이어가는데 크게 억지스럽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이건 아마 질질 끄는 장면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은데 고구마 없이 스토리를 전개한 것을 칭찬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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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을 모두 모아둔 영화인 만큼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다들 연기력이 뛰어났기에 스토리를 이해하고 몰입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하지만 캐릭터들의 분량에 있어서는 약간 불만이 있는데 너무 태호(송중기)에만 초점을 두지 않았나 싶다. 도입부도 태호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승리호 선원들의 과거를 회상하는 씬에서도 태호의 이야기만 특출 나게 길다. 다른 승리호 선원들의 과거 이야기도 상세하게 알려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다. (나는 모든 캐릭터들이 매력적이라 생각했기에) 그렇지만 각자의 캐릭터들의 색깔이 분명했고 모든 배우들이 이를 잘 녹아낸 것 같아 영화를 이해하고 즐기는데 큰 불편함이 없었던 것 같다. 나의 믿보배들을 다시 한번 더 증명할 수 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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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에서 감초 역할은 당근 업동이(유해진)이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실재 모습이 아니라 로봇의 모습으로 영화에 등장했으나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소리를 듣자마자 유해진 배우라고 바로 알아챘을 것 같다. <인터스텔라>의 타스나 <로봇, 소리>의 소리 역할처럼 SF영화에는 심심치 않게 인간처럼 말 잘하는 로봇들이 등장한다. 결국은 다 그래픽 처리가 되기 때문에 배우의 겉모습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 몰라도 목소리만으로 연기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쩌면 배우들에게 있어서는 까다로운 역할이 아닐까 싶다. 그런 점에 있어서 유해진 배우의 연기력이 더 돋보인 것 같다. 훗날 한국 SF영화에는 단편적인 표정 변화를 지닌 업동이를 넘어서는 <아바타>처럼 모션 캡처 등을 사용한 생동감 있는 모습의 캐릭터가 등장하기를 슬쩍 기대해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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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에서 설리반 박사는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해 화성을 훼손되기 전의 아름다웠던 지구의 모습으로 만들고 도덕성을 비롯한 철저한 검증을 통해 '선택된 사람들'만을 받아들인다. 그는 화성에 사는 사람들을 '좋은 사람'이라 칭한다. 선택받지 못해 오염된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아니기에 없어져도 된다는 사이코패스 같은 신념을 가진 그는 화성 거주민이 아닌 승리호 사람들이 아이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장면을 보고 혼란스러워하며 최후를 맞이한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도덕성을 측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설리번 박사는 한 남자에게 그의 가족을 운운하며 살인을 지시했다. 그리고 그 남자가 그 지시에 따르자 그에게 당신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중학교 도덕 시간에 배운 것처럼 살인은 범죄고 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되어서는 안 되지만 우리가 100% 진심을 다해서 그 남자를 비난할 수 있을까? 그 사람과는 대조적으로 승리호 선원들은 아이와 지구를 위해 목숨을 던졌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더 칭송받아야 마땅할까? 난 이들의 차이는 잃을 게 있느냐 없느냐인 것 같다. 잃을 게 있는 사람은 망설일 수밖에 없다. 물론 선택은 개인의 몫이지만 우린 우리도 망설일 것임을 알기에 명백하게 잘잘못을 따질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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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에서 인간들은 국적으로 나뉘지 않는다. 오염된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깨끗한 화성에 사는 사람들로 나뉜다. 미래 사회에서도 계급사회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씁쓸하지만 왠지 모르게 당연하게 느껴지는 가정이 잘 드러나 있다. 이건 이러한 차별을 만들어 낸 설리번 박사가 죽어도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화성에는 선택된 사람들이 살고 있고 지구에는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감독은 지구의 사람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화성으로 쳐들어 가게 하지도 않고 화성의 사람들을 끌어내려 지구에 살게 하지도 않는다. 다만 지구에 나무를 심는다. 오염된 지구를 화성처럼 깨끗하게 다시 살리고자 한다. 이것이 영화가 제시하는 차별에 대한 계급에 대한 대답인 것 같다. 주변을 자신과 같은 상황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스스로를 원하는 상황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남의 불행을 바라기보다 스스로의 행복을 바라는 것이 세상에 대한 환경에 대한 원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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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호>의 결말은 대부분의 SF영화처럼 해피엔딩이다. 전개 방식이 뻔히 보이는 영화임에도 난 이 영화가 참 재미있었다. 심오하지도 않았고 크게 감동적이지도 않았지만 우주선들끼리 치고받고 하는 장면은 꽤나 박진감 넘쳤고 나노 기술, 우주 정거장, 수소 폭탄 등 관심이 갈 만한 흥미로운 소재를 사용하기도 했다.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생동감 넘치게 우주와 우주선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없었다. 그래서 더 신기했고 놀라웠던 것 같다. 혹시라도 SF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쯤은 봤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봤던 한국의 SF영화 중에서 가장 잘 만든 영화라 생각하고 앞으로의 한국의 SF영화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 영화를 보면서 적어도 실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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