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는 왜 재벌이 없을까”라는 글에 대한 반응이 예상보다 컸다. 그 가운데 나온 질문은 이것이었다: “LVMH 같은 기업은 재벌이 아닌가?”
루이비통, 디올, 펜디, 불가리 등 수많은 브랜드를 보유한 거대한 기업으로, 베르나르 아르노 가족이 주요 지분을 보유한 그룹이기 때문에 재벌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프랑스 기업 가운데 규모만 보면 LVMH는 매우 큰 그룹이다. 그렇다면 LVMH를 재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먼저 ‘재벌’이라는 개념을 간단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1. 재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재벌(chaebol)은 보통 가족이 지배하는 대규모 기업집단을 의미한다. 여러 계열사를 거느리고 다양한 산업에 동시에 진출해 있는 기업집단을 가리키는 말로, 한국 경제에서 독특하게 발전한 기업 구조를 설명할 때 사용된다.
이 용어 자체는 일본의 자이바츠(zaibatsu)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의 미쓰비시나 미쓰이 같은 기업 집단처럼 금융, 제조, 무역 등을 동시에 지배하던 가족 기업 그룹을 설명하는 개념이었다. 이후 한국의 대기업 집단을 설명할 때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2. LVMH는 이 정의에 부합하는가
이 기준을 기준으로 보면 LVMH는 조금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LVMH는 약 70개가 넘는 브랜드를 보유한 세계 최대의 럭셔리 기업 그룹이다. 루이비통, 디올, 셀린느, 티파니 같은 패션 브랜드뿐 아니라 와인, 화장품, 시계 등 다양한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베르나르 아르노와 그의 가족이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겉으로 보면 하나의 거대한 기업 왕국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LVMH는 재벌이라기보다 럭셔리 브랜드 그룹에 가깝다. 재벌의 핵심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여러 산업에 걸친 다각화다. 한국의 재벌 기업들은 전자, 건설, 금융, 화학, 유통 등 서로 다른 산업에 동시에 진출해 있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기업 그룹이 국가 경제의 여러 영역을 동시에 차지하는 구조다.
반면 LVMH는 대부분의 사업이 럭셔리 산업이라는 하나의 영역 안에 집중되어 있다. 패션, 주얼리, 화장품, 와인 같은 분야는 서로 다른 산업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두 같은 럭셔리 소비 시장 안에 속한다. 다시 말해 다양한 산업을 동시에 지배하는 기업집단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산업 안에서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확장한 기업에 가깝다.
또 다른 차이도 있다. 재벌은 보통 여러 계열사가 복잡한 지배 구조로 연결된 기업집단 구조를 갖는다. 반면 LVMH는 다양한 브랜드를 인수해 하나의 그룹 아래에 두는 브랜드 중심의 기업 구조다. 각 브랜드는 독립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그룹 안에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규모만 보면 거대한 기업이지만, 경제 구조적인 의미에서의 재벌과는 성격이 다르다.
물론 이것이 재벌이 좋다거나 나쁘다는 이야기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재벌은 특정 국가의 산업화 과정에서 등장한 하나의 기업 구조일 뿐이다. 국가마다 산업 발전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기업 조직의 형태도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LVMH는 매우 큰 기업 그룹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한국식 재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