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행 버스를 볼 때면 마음이 콩닥콩닥 뛰었다. 여름방학을 손꼽아 기다리다 마침내 버스에 오르면, 달리아가 담장 너머로 얼굴을 내밀던 큰 이모님 댁으로 마음이 먼저 달음박질쳤다. 춘천댐 근처 이모네 농장엔 작은 시골집이 있었다. 집 앞 논두렁길 저편에서 하나둘씩 나타나는 사촌들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다.
외갓집 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호수에서 물장구를 치다가 저녁이 되면 언니 오빠들은 풀밭 위에 텐트를 쳤다. 텐트 안에 옹기종기 모여 트윈폴리오의 노래들을 불렀다. 그 텐트 안에서 밤을 새우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언제 잠에 떨어진 것인지, 아침이면 늘 장작 타는 냄새가 코를 간질이는 시골집에서 눈을 떴다.
어느 여름, 우리 가족은 경춘선 열차를 탔다. 오빠는 기타를 쳤고 언니들과 나는 노래를 불렀다. 처음엔 모깃소리로 눈치를 보다가 주변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에 가득한 미소에 용기를 얻어 노래는 점점 신이 났다. 열차는 철커덕철커덕 소리를 내며 달렸고 작은 언니와 나는 다투어 창밖으로 팔을 내밀었다. 팔을 만지는 바람이 시원하고도 부드러웠다. 가끔 작은 나뭇가지들이 매섭게 손을 때리고 사라졌다. 빨갛게 남은 회초리 자국을 보고도 그 바람 속으로 자꾸만 팔을 내밀고 싶었다.
서울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였다. 여름방학마다 춘천행 열차를 타러 청량리로 갔다. 청량리역은 여행을 떠나는 대학생들로 붐볐다. 좌석표가 매진되어 서서 가야 할 때도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도착지에서 내릴 수가 없는 지경이 되면 그 화려하고도 떠들썩한 젊음들은 열차 창밖으로 가방과 텐트를 내던졌다. 마석, 대성리, 청평, 가평, 물가 마을마다 젊음을 와르르 토해내고 열차는 계속 달렸다. 가평을 지나 열차가 홀쭉해지면 앉을 자리가 났다. 가벼워진 열차는 수월히 나를 춘천까지 데려다주었다.
지난해 유월, 작은 언니와 함께 오랜만에 한국에 나갔다. 서울 큰 언니 집에 들렀다가 용감하게 나왔다. 전철로 성북역까지 가서 경춘선 ITX를 타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서둘러 매표 기계에서 표를 사서 ITX에 탔을 때,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내가 산 표는 춘천행 전철 표였다. 시애틀 촌티를 가는 곳마다 숨길 수 없었다.
긴 의자가 양쪽으로 늘어선 전철 칸에 들어섰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익숙한 옛 이름의 역들이 하나씩 다가왔다. ITX를 탔더라면 기억의 역에 서지 못하고 쏜살같이 지나쳤으리라. 기차가 역에 설 때마다 오래 전의 나와 마주쳤다.
대성리 계곡에서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던 단발머리 중학생이 다가왔다. 기차로 마석에 가기로 했던 날, 소리치는 장대비를 그으며 공중전화를 거는 여고생도. 삼악산이 가을에 푹 잠겨있던 날. 찰칵, 하늘에서 떨어지는 떡갈나무 잎들 사이로 친구들이 화안하게 웃었다. 어느 겨울, 시린 얼음물에 세수를 하고 안개가 물 위로 미끄러지던 의암댐으로 나갔다. 맑은 물에 잠긴 조약돌 같은 젊은 날이었다.
김유정 역. 거기 살던 친구 집에서 화롯가에 둘러 앉아 수다를 떨었다. 돌아오는 길, 뽀득뽀득 눈 밟는 소리가 유난히 귀에 울리더니, 집에 돌아와 불 멀미를 앓았다. 전철은 어느덧 아파트촌이 가득한 남춘천으로 들어섰다. 넓은 논밭 위로 잠자리가 날던 저기 어디쯤, 논가의 작은 교회에서 연극을 했다. 무대화장을 한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의 옷자락을 잡고 울었다. 기억이 창밖의 초여름처럼 싱그럽게 다가왔다가 다시 멀어져 갔다.
춘천 가는 길엔 나의 살아온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나이 들어가는 딸이 봄꽃보다 예쁘다 하시는 엄마가 계시다. 그래서 그 길은 늘 설레는 봄이다. 돌돌돌 냇물이 흐르고 강아지풀이 피어난다. 나는 봄내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