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서 스트릿 출구 가까이 왔다. 출근길 러시아워라 출구 밖 고속도로까지 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오래전 고속으로 달리던 차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출구로 나가려고 서 있던 차를 뒤에서 들이받는 사고를 목격했었다. 그래서인지 이런 광경은 나를 긴장하게 한다.
출구를 빠져나가면 길은 머서 스트릿이 된다. 이 길엔 ‘머서 엉망(Mercer Mess)’이라는 오래된 별명이 있다. 이 길의 정체 해결을 위해 오랫동안 확장공사도 했지만, 오명을 아주 떨쳐버리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길이 지나는 곳엔 IT 사옥들이 줄지어 섰고 시애틀 명물 스페이스 니들로 이어진다.
첫 번째 만나는 오거리에 신호등이 있다. 가끔 시애틀 총영사관이나 다운타운에 볼 일이 있을 때는 신호등에서 직진하고 출근할 때는 우회전한다. 언제부턴가 신호를 기다리자면 맞은편에 지반공사 중인 건물이 보였다. 어느덧 건물이 모양새를 갖추며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신문 기사를 읽었다.
어쩐지 낯익은 사진 속 건물이 눈길을 끌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매일 마주쳤던 바로 그 건물이었다. 타워 크레인이 차도로 떨어져 사선으로 건물에 기댄 장면은 도무지 현실 같지 않았다. 그 사고로 건물 앞을 지나던 차 안의 두 사람과 크레인 위에서 작업하던 두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날 오거리에서 나는 우회전을 했고 희생자들은 직진했다. 나 일 수도 있었다.
장비를 떼어내는 과정에서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 생긴 참사였다. 사고의 책임은 건물 공사와 연관된 세 회사에 있었다. 크레인을 소유한 회사와 크레인 서비스를 담당한 회사 그리고 자격을 갖춘 관리자가 없이 작업을 진행한 건설회사다. 첨단기술을 다루는 회사들이 가장 기본이 되는 중력의 법칙을 몰랐을 리 없다. 질문을 던진다. 만약 사람의 안전에 관한 일이 아니라 이윤에 관한 일이었다면 그들은 얼마나 치밀하게 일을 진행했을까.
한국에서도 몇 해 전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크레인이 떨어져 작업하던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기막힌 일은 그 크레인 회사가 3년 전에도 똑 같은 사고를 내서 세 명이 목숨을 잃고 네 명이 다친 것이다. 사고 한 달 뒤 가족의 이름으로 다른 회사를 차려 같은 방식으로 일했다. 건물이 올라가는 높이에 따라 크레인의 높이를 조정하기 위해 볼트를 16개 사용해야 하는데 4개만 사용했다. 이유는 시간과 비용 절감을 위해서였다.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생명을 소홀히 여기다니, 생명보다 위에 앉은 돈의 위엄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사람의 목숨대신 그들이 감당했다는 책임은 어떤 것일까. 결국 돈으로 사태를 해결했을 터인데 이럴 때 돈이라는 단어는 한없이 씁쓸하게 들린다. 인간이 인간의 죽음에 책임진다는 것이 애초에 가능한 일일까.
지금 머서 스트릿의 그 건물엔 알록달록한 구름이 걸렸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최첨단 기업의 사옥이 완성되어 세계의 두뇌들이 모여 일하고 있다. 이 건물 옆을 지날 때마다 비스듬히 건물에 기대섰던 크레인이 떠오른다. 최첨단 기술도 피해 갈 수 없었던 중력의 힘. 중력의 힘을 무시하게 만든 것이 부디 돈을 갈망하는 인간의 악의가 아니었기를. 차라리 기술의 오류나 나태함 때문이었다면 적어도 인간의 악의가 아닌 부족함 때문일 테니.
언젠가 머서 스트릿에서 정체가 해결된다 해도 내겐 ‘머서 엉망’이라는 이름이 남게 될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