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로 향한 벽은 온통 유리다. 창밖으로 유니언 호수가 보인다. 호수 위로 비행기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날아 앉고 카누가 물을 가르며 지나간다. 호수 왼쪽으로 퀸앤 언덕, 오른쪽으론 프리몬트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그 옆으로 보이는 곳은 해마다 독립기념일에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개스웍 공원이다.
먼발치에 가로로 걸쳐진 오로라 다리가 보이고 그 뒤편 어디엔가 발라드 운하가 있다. 이 호수의 배들은 그 운하를 통해 바다 구경을 하고 돌아오곤 한다. 흰 구름 몇 점을 얹은 파란 하늘이 호수와 그 위에 떠있는 모든 것, 그리고 호수 주변의 마을들을 품고 있다. 에메랄드 도시는 누구나 감탄하는 경치를 가졌다.
창밖의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사실 저 오로라 다리에서 몇 해 전 충돌사고로 이곳 대학에 공부하러 온 유학생들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프리몬트엔 레닌의 동상이 있다. 철거해야 하느냐 마느냐 말이 많다. 다리 너머 발라드 운하엔 연어를 보호하기 원하는 사람들과 연어가 올라오는 길목에 배를 대고 잡아 올리는 원주민들과의 갈등도 있다. 아, 그리고 내가 지금 이 모든 경치를 바라보고 있는 이곳은 병원이다. 사람이 사는 곳엔 늘 난제와 갈등이 산재해있다.
SNS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자주 드나드는 사이트를 통해 많은 사람의 현재 사정에 대해서도 별 노력 없이 쉽게 알 수 있다. 두꺼운 유리창 밖으로 스쳐 지나는 풍경처럼, 말과 말 사이, 장면과 장면 사이의 행간을 놓친 채로. 이 소통에는 수많은 이모티콘으로도 부족한 그 무엇이 있다.
그중 요즘 떠오르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생일, 여행, 결혼, 파티. 모두 그들 삶의 최고의 순간, 붙잡고 싶은 순간들을 나눈다. 반면 몸과 마음의 고통으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남들의 화려한 순간을 대할 때 더욱 더 초라해지는 자신을 느낀다.
가까이 보면 인생의 난제 하나쯤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난제는 바람에 따라 자주 우쭐대는 연을 잡아주는 얼레일 수도 있다. 아니, 어쩌면 삶을 이루는 여러 조각 중 가장 평범한 조각인지도 모른다. XX와 XY에서 X와 같은 것.
토끼 이모티콘으로 유명한 일러스트 작가 구경선 씨가 겪은 일이다. 스킨 작가로 일한 일 년 동안 모든 에너지를 쏟았지만, 고객들은 그녀의 그림을 찾지 않았다. 어느 날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다 귀찮아!’ 라는 제목으로 널브러져 누워있는 토끼를 그렸다. 그녀를 외면하던 대중이 폭발적 반응을 보인 건 그때부터였다. 사람들은 그녀의 토끼에게서 자신을 본 것이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사진을 보내고 싶었다. 얼굴 주름이 희미하게 나온 사진을 골랐다. 클릭! 그 순간 권투선수처럼 훅 치고 들어오는 단어가 있었다. 페르소나, 그리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의도적 외면. 우리는 자신에게조차 정직하지 않기에 더욱 더 외로워지는 건 아닐까? 주름이 가려진 나의 웃음에 누군가가 초라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린 다 아픈 데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