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지그시 감았다. 입은 살짝 옆으로 벌려 따뜻한 물속에 몸이 녹아드는 듯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다. 두 팔은 등 뒤의 벽에 걸었다. Mr. Tea는 지금 반신욕을 즐기고 있다. 지극히 평화로운 이 모습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망측하다. 구멍이 숭숭 난 그의 바지에서 서서히 차가 빠져나오고 잠시 후에 나는 그의 바지 속에서 우려낸 찻물을 꼴깍꼴깍 마신다. 음, 구수하네. 입맛을 다신다.
실리콘으로 만든 그의 몸은 원래 비어있다. 몸의 가운데를 분리하면 두 동강이 난다. 따뜻한 차 한 잔이 생각난다면, 그의 바지에 차를 채워 넣고 다시 몸통과 맞춘다. 마지막으로 뜨거운 물을 부은 찻잔에 그의 몸을 담그고 두 팔을 잔 밖으로 뻗도록 걸친다.
처음 그가 우리 집에 왔을 때, 무슨 망측한 발상이냐고 사용을 거부했다. 몇 해가 지난 지금, 이 엽기는 일상이 되었다. 그 후 Mr. Tea는 새 가족이 생겼다. 외뿔고래와 돌고래다. 실리콘으로 만든 동물들이 티백의 역할을 대신한다. 그들의 몸은 절반으로 나누어져 차가 채워질 때까지 한 그릇 안에서 뒹군다. 자세히 보면 공포영화의 한 장면인 것 같아 머리를 흔들기도 한다.
며칠 전 아침이었다. 차를 끓이려고 Mr. Tea의 상체를 꺼냈다. 하체를 찾다가 그의 바지는 구멍이 커서 차 잎이 새어 나온다던 딸의 말이 생각났다. 구멍이 작은 외뿔고래의 하체를 그의 상체에 맞춰보았다. 다행이 딱 맞았다. 기묘한 찻잔을 받아 든 딸이 으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졸지에 Mr. Tea는 인어왕자가 되었다. 그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엽기였다. 만약 극진히 대접하고 싶은 손님이 집에 오신다면 Mr. Tea를 테이블 위에 올릴 수 있을까. 혹 그분이 속이 메슥거린다고 하지는 않을까.
세상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한다. 꽃미남 배우에게 연쇄살인범 역을 맡기기도 하고, 소녀들의 친구인 인형을 이용해 공포 영화를 만들기도 한다. 지극히 순수한 이미지에 악귀의 이미지를 담는다.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는 인간들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을 모아 공포의 조합을 만든다.
처음엔 혐오스러워 멈칫하기도 하고 막장 드라마의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비웃지만, 정작 채널을 돌리지 못하고 이야기에 빠져든다.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먹으며 희열을 느끼는 엽기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충동으로 가득한 등장인물에 기묘한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엽기 영화를 보다 관객들이 실신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자극이 무성한 시대, <엽기적 그녀>는 평범한 그녀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새로운 자극을 원하는 인간들의 호기심을 채워줄 그 무엇이 다가올 것인가. 창의(創意)가 광의 (狂意)가 되지는 말아야 할 테니, 우리 집 찻잔 속 엽기는 여기서 마무리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