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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든 햇살 Jul 17. 2023

단층촬영


  오 층 주차장에서 곱슬머리 아가씨가 저녁 하늘을 향해 셔터를 눌러댄다. 주황과 보랏빛이 현란한 오늘 같은 노을을 일생에 몇 번이나 마주치게 될까? 중년을 훌쩍 넘어서고야 깨닫게 된 순간의 귀중함. 이제 겨우 스물 내외일 텐데 그녀는 벌써 이 사실을 깨달은 걸까? 내 차가 아래층으로 돌아내려 가는데 그녀는 긴 머리를 등 뒤로 드리우고 순간을 잡고 있다. 그녀가 옳았다. 이런 노을은 놓치는 게 아니다. 


  놓쳐버린 나의 순간을 떠올려본다. 갯벌에 누워있는 조개 하나를 찍은 적이 있었다. 조개는 나비 모양으로 입을 벌렸다. 조개가 누워있는 갯벌은 모래로 그려진 선들이 사선으로 물결을 그리고 있고 선과 선 사이엔 조각난 파란 하늘이 담겨 있었다. 애석하게도 필름을 잃었다. 그런 사진 한 장 다시 찍으면 된다지만 같은 빛, 모래, 하늘, 그리고 바람까지도 같은 상황을 만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웃집 자목련이 하도 고아서 숨을 멈추고 셔터를 눌렀다. 이웃에게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나더러 '좋은 눈'(good eye)을 가졌단다. '좋은 눈'이라는 단어는 딸 아이 소프트볼 경기를 응원할 때 자주 듣던 말이다. 투수가 던진 공이 빠르게 공중을 날아가는 짧은 순간에 타자는 때릴 것인가, 고를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홈런을 때릴 만큼 좋은 공이 들어올 때를 잘 알아보기란 힘들다. 수십 번 셔터를 누른다 해도 마음에 드는 한 컷을 만나기가 쉽지 않듯이.


  그런가 하면 수고 없이 걸려든 순간도 있다. 뒷마당에 활짝 핀 벚꽃 아래서 참나물을 뜯었다. 양푼에 쏟아놓으니 하나 가득하다. 찬물을 틀어 잎들을 흔들어 씻는데 물 위로 동동 떠오르는 벚꽃 잎들. 먹거리 준비라는 막중한 책임을 잊고, 연둣빛 섬세한 디자인의 잎, 그리고 잎들 사이로 동동 떠다니는 분홍 꽃잎에 마음을 뺏겨버렸다. 이런 순간을 그냥 지나칠 순 없다. 찰칵. 기대하지 못한 아름다움이 얼떨결에 사진에 걸려들 때, 밀려드는 기쁨에 당황하게 된다.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지인이 열었던 사진전시회에서 뜻밖에도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났다. 사진 속의 나는 집 앞마당에서 친구들과 사방치기를 하고 있었다. 가끔 꿈꾸었던 어린 내 모습과 마주 대한 현실의 모습은 많이 달랐다. 친구들의 모습은 낯익은데 정작 내 모습이 낯설었다. 땋은 가랑머리에 반바지를 입은 촌스러운 여자애. 뼈가 드러난 종아리가 애처롭게 말랐다. 내 입속에 조금이라도 더 밀어 넣으려 늘 애쓰셨던 어머니. 그 마음을 또렷이 읽게 되는 순간, 코끝이 찡했다. 사진은 피하고 싶은 사실을 직시하게 한다. 또한, 사실과 느낌을 설명하는 매우 힘 있는 도구이다. 긴 신문기사의 내용보다 기사를 압축한 한 장의 사진이 오래 뇌리에 남을 때 그 힘에 놀라게 된다. 


  장례식에서 고인의 살아온 생애가 몇 장의 사진으로 정리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사람만의 특유의 표정을 담은 사진을 대할 때, 벌써 그리워 젖은 눈으로 웃어본다. 고인이 살아온 삶을 강한 시각적 울림으로 돌아보는 방법은 역시 사진이 제일인가 보다. 살아가는 시간 동안 문득문득 어떤 장면들이 내 삶을 추억하는 순간들로 뽑힐까 생각해 본다. 새끼손가락과 엄지손가락 사이. 삶을 한 뼘이라 하던가. 삶은 짧고 사진은 순간을 담는 일이다. 그래서 장례식과 사진은 잘 어울리는가 보다.


  사진은 내 삶의 단층 촬영이다. 내장과 뼈와 혈관의 단면을 소상히 보여준다. 사진 속에 내게 소중한 것들을 담는다. 자세히 보아야 한다. 눈길을 주어야 수줍은 매력이 빛으로 나온다. 호흡을 멈추고 손가락으로 셔터를 눌러 지나가는 시간에 정지 명령을 내린다. 셔터를 열었다 닫는 짧은 순간, 적정량의 빛 속에 시간이 갇힌다. 잡힌 찰나는 언제라도 재생할 수 있는 현재가 된다. 그러면 사진 속의 현재가 조용히 말을 건넨다. 피할 수 없는 사실이 냉정하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 그립다. 눈을 뗄 수 없는 순간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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