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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든 햇살 Aug 13. 2023

푸른 밤

열세 살의 희망

   그림의 맨 위엔 어두운 하늘이 있다. 하늘과 맞닿은 먼 산은 밤의 공기에 젖어 검디검다. 그 아래 가까운 산이 있다. 흐린 실루엣으로 구분할 뿐 검은 것은 마찬가지다. 내 발치가 그림의 아래쪽이다. 널찍한 길은 산 쪽으로 향한다. 산을 향해 가지를 뻗어 올라갈수록 길은 폭을 좁힌다. 전등을 열매처럼 달아맨 길들이 산을 오른다. 오를수록 빛의 반경이 줄어들다가 산꼭대기쯤에서 두어 개의 점으로 반짝인다. 어느새 여러 갈래로 뻗은 길은 골과 산등성이를 넘어 사라진다. 

   열세 살 나는 깜깜한 밤길을 타박타박 걷고 있었다. 살던 곳에서 꽤 큰 언덕을 넘은 것 같은데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집들은 먼 데서 불빛으로만 반짝였고 가로등마저 한산한 길은 적막했다. 내딛는 걸음이 내는 마찰음이 전부였다. 무서운 것은 아니었지만 꿈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처럼 답답하고 어지러웠다. 밤공기에 코끝이 얼얼했고 몸은 코트 속으로 점점 움츠러들었다. 

   눈에 또렷한 것은 길의 양옆으로 끝없이 뻗은 사각형들뿐이었다. 도시가 확장되는 지역,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일상용어가 된 동네의 무수한 집터는 누군가의 미래였다. 그 네모들 속에 이런저런 그림을 그려보았지만, 상상의 끄트머리에선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길이 보랏빛으로 모호하게 흔들릴수록 나에게 다가올 미래가 궁금했다. 저기 산 넘어 사라진 길들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아버지가 장학사였던 같은 반 아이가 있었다. 또래들에게서 볼 수 없는 어른스러움을 느껴서 가까이 가기 어려웠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네는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 결국 그 애는 명문 여고 근처로 이사를 가버렸다. 천진한 성격을 가진 아이들이 좋았다. 애늙은이 소리를 들었던 나보다 어쩐지 그 애들이 더 행복한 것 같았다. 월요일마다 교장 선생님의 훈시 도중 갑자기 픽 쓰러져 양호실로 실려 가던 아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애들 모두를 남몰래 부러워했다. 매일 만원버스에 시달리는 도시 변두리의 삶은 어쩐지 쓸쓸한 기운이 깔려있었다.   

   낮은 언덕을 내려가다 동그마니 서 있는 이층집을 만났다. 2층 창에서 하얀 빛이 어둠 속으로 쏟아져 나왔다. 눈을 들었을 때 그 방의 반대편 창에 담긴 하늘이 보였다. 파란 네모였다. 그 파랑은 내가 본 모든 파랑의 원형인 듯 맑았다. 눈을 잡아당기는 그 색에 잠시 넋을 잃었다. 어둠에 묻혔던 본래 하늘에서 나만의 비밀을 발견하고 아찔한 기쁨을 느꼈다. 너만 알고 있어. 밤하늘은 줄곧 저렇게 파랬다구! 눈에 보이는 검정은 속임수였어. 그날의 파랑은 암울한 현실을 거절하는 나만의 빛,  나에게 주어진 계시였다. 

   그날 이후 계속 되는 길에서 평온과 행복을 바랐었지만 그것은 내 좁은 소견이었다. 등불이 이끄는 길은 늘 성숙으로의 길이었다. 편한 것을 놓고 물레 위에서 새롭게 빚어지는 성형에서 부터 초벌, 재벌이 계속 되었다. 길은 나의 상상이 미칠 수 없었던 곳, 태평양으로 이어져 지금 나는 미국 땅에 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의 길이도 알 수 없다. 내 앞에 어떤 언덕, 산과 바다가 있을지 알 수 없다. 단지 등불이 비추는 두어 걸음 앞을 내다볼 뿐이다.  

   이 그림은 분명 그날 밤을 담고 있지만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계시는 현실이 되었고 파랑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기 때문이다. 맨 위쪽 하늘을 온통 푸르디푸르게 칠했다. 지금도 내 앞엔 다가올 보라가 놓여있지만 뒤돌아보면 살아낸 길들은 온통 파랑이었다. 파랑 물감을 잔뜩 머금은 붓으로 하늘을 덮을 때 마음속엔 감사가 고였다. 


   엄마, 뭘 그려요? 딸이 물었다. 엄마가 오래전 어느 날 밤에 이 길을 걸었어. 여기 창문에 파란색 네모 보이지? 이게 엄마의 희망이었어. 커피를 한 손에 든 딸이 이젤 앞에서 가만히 그림을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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