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든 햇살 Jul 18. 2023

끝없는 여름

   8월의 마지막 날, 어제 흩뿌린 비로 마당의 잎들은 겨우 생기가 돈다. 유난히 무더운 날씨에 놀랐지만 시애틀엔 여름에 비할 것이 없다. 여름은 또 한 번 위로였다.  

   올봄 뒷마당 담장 아래로 잔디를 걷어내고 밭을 만들었다. 백일홍 꽃밭을 만들어 여름부터 가을까지 즐길 계획이었으나 토끼들이 연한 새싹의 대를 똑똑 끊어 야무지게 삼켜버리는 바람에 결국 그 밭을 포기하고 말았다. 장소를 옮겨 다시 씨앗을 뿌려 백일홍은 여름의 끄트머리에 겨우 꽃을 보였다. 반면에 피튜니아는 여름의 대표 주자가 되었다. 늦봄에 한 포기를 사다 심었는데 여름내 변함없는 얼굴로 활짝 웃어주더니 지금까지도 꽃이 질 기색이 없으니 쓰다듬어주고 싶다. 예상을 뒤엎는 완패와 선전을 경험한다.  

   뜻밖의 만남도 있었다. 큰길 쪽 담장 밖 그늘진 곳에 무리 지은 보라가 보였다. 그늘로 걸어 들어가 확인해보니 그것은 아주가였다. 관심을 가졌던 꽃이었는데 이렇게 얻게 되니 횡재한 기분이었다. 누가 거기까지 옮겨왔을까? 바람이거나 다람쥐, 새는 아니었을까? 담장 안으로 들여와 그늘진 곳에 심었더니 여름내 자리를 넓히며 잘 번지고 있다. 소담하게 피어오를 아주가 무리를 상상해본다.

   좋은데, 좀 정신이 없어! 식구들이 꽃밭을 보며 하는 말이다. 위치를 정해 원하는 꽃들을 심고 지난해 씨앗이 떨어져 자연 발아로 올라오는 꽃들은 내가 모르는 무슨 뜻이 있겠지 하고 그대로 살려둔 이유였다. 자리를 잘못 앉힌 노루오줌은 그늘로 옮겨주어야 하고 큰 키를 예상치 못했던 접시꽃은 화단 뒤쪽으로 옮겨야 한다. 심고 키워보며 하나하나의 성향을 파악해간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내 뜻과 다른 결과를 언제든 만날 수 있다. 뜻밖에도 나를 배우고 자라게 하는 것은 그 예상치 못한 결과들이다.  

   올해 들어 더욱 마음을 빼앗는 색은 하양이다. 너무 화려하지 않아 배경으로 좋은 여백의 색이다. 처음으로 안개꽃을 심었다. 잔잔한 흰 꽃망울로 큰 꽃들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개성이 강한 꽃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게 부드러운 간격이 되어준다. 꽃의 영어 이름이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아기의 숨결’(baby’s breath) 앞에 모든 경직된 얼굴은 온화해지지 않을 수 없을 테니. 

   가끔은 여백의 색이 주연으로 나서도 좋다. 동네 산책을 하다가 이웃집 현관 옆에 핀 흰 수국을 만났다. 탐스러운 꽃송이에 순수와 품위가 묘하게 겹쳐있는 하양에 매료되었다. 눈치 빠른 딸들이 어머니날 선물로 하얀 수국을 내밀었다. 큼지막한 꽃봉오리들을 피워 올린 화분은 ‘끝없는 여름(Endless Summer)’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었다. 여름이 빼어난 시애틀에 사는 나는 ‘여름은 바로 나’라고 말하는 그 이름의 반칙이 마음에 쏙 들었다. 여름내 꽃을 피우는 품종이라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하지만, 내겐 “당신에게 여름이 끝없기를!” 이라는 축복의 말로 들렸다. 

   이제 꽃들이 씨앗을 맺는 일이 한창이다. 꽃이 지고 난 델피니움은 긴 주머니 속에 씨앗들을 품는다. 마른 씨방을 흔들면 씨앗들이 찰찰 소리를 낸다. 접시꽃은 씨방의 원심을 중심으로 씨앗을 세워 차곡차곡 한 바퀴 돌려 쌓는다. 교황의 동전은 동그란 은색 막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납작한 씨앗이 맺힌다. 그들 모두 각자의 독특한 방식으로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 낸다. 

   씨앗 맺기에는 많은 양분이 필요하다. 꽃을 더 오래 보고 싶을 때는 이미 져버린

꽃을 따주어 양분이 씨앗으로 가는 대신 새 꽃봉오리를 만들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년에도 꽃을 보기 원한다면, 더 많은 씨앗이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 꽃을 즐긴 후엔 가을 햇살에 씨앗이 여물도록 잠잠한 내실(內實)의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화려한 꽃에만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었다. 눈부신 여름이 끝나갈 무렵이면 아쉬움이 컸다. 젊음이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에 풀 죽었던 30대의 나처럼 여름의 끝은 안타깝기만 했다. 이제는 꽃이 진 자리에서 씨앗을 맺는 모습도 더없이 기특해 보인다. 다음 세대를 대견하게 여기며 응원하는 마음이 된다. 알알이 영근 씨앗 속엔 또 한 번의 여름이 들어 있으니, 씨앗은 설레는 약속이다. 꽃들이 씨앗을 맺는 지고한 명령을 이행하는 한, 여름은 끝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봄내로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