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논술 강사
그 무기력한 백수 생활에 몸도 마음도 지쳐 가던 어느 날, 우연히 교회 고등부 교사로 함께 섬기던 선배와 다른 선생님이랑 저녁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같이 교회에서 고등부 교사를 섬기던 참이었는데 회식 같은 걸 했던 것 같다. 그즈음 교회 선배는 진주에 있는 신설 입시 학원 영어 교사와 교무로 일을 시작하고 바쁘게 보내던 중이었다.
마침 고등학교 국어를 가르칠 선생님을 찾는다고 나에게 이력서를 한 번 내보라고 했다. 뒷날 바로 연락이 왔다. 적임자를 못 구하던 차에 이력서를 보고 바로 만나자고 했다. 학원 원장님을 만났다. 경력이 없었지만 적임자일 것 같다며 흔쾌히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고등학교 입학하는 부잣집 자녀들을 위한 학원이었다.
부자 동네에 있었고 그곳에서 이름만 들어도 굵직굵직한 기업과 병원 원장의 자녀들이 학생이었다. 중학교를 수업을 마친 겨울 방학에 고등학교 과목 예습반으로 구성된 특별반이었다. 30명 남짓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그 당시 대학 입시형태인 수능을 대비한 고등학교 국어 수업을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대학 입시에 새로 시행될 논술 시험을 대비하는 일이었다. 수능은 문제집 하나를 가지고 수업을 하면 되는 단순한 과목이었다. 하지만 시행이 발표된 논술은 고민이 많았다. 대학 입시에 논술을 반영하는 첫 해 입학생들이 되는 학생들이었다.
논술을 입시에 반영한다는 발표만 있었지 세부 지침조차도 나오지 않은 때라 자료가 부족했다. 학원에 배달된 신문을 우연히 보았다. 경향 신문이었다. 매주 토요일 학생들에게 논술 주제를 주고 보내온 논술 원고 중 최우수 학생은 신문에 전문을 실어주었고 나머지 우수상, 장려상은 이름을 실었다. 신문사 주제를 학생들에게 주고 서로 생각을 나누게 했다. 그리고 개요작성을 시킨 후 쓰게 했다. 잘하는 학생도 있었고 힘들어하는 학생도 있었다. 독서량이 많은 학생들이 유리했다 학생들이 쓴 문장을 하나하나 고쳐주었다.
대학원 졸업하면서 문법을 가르치는 교수님 밑에서 혹독한 문장 교정 교육을 받은 덕분이었다. 이때를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문 첫 장을 넘기지 못하고 가져갈 때마다 벌건 볼펜으로 슈정 된 종이를 받았다. 절망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논술교사가 되어 학생들의 문장을 누구보다 잘 지도할 수 있게 되었다.
완성도가 떨어지건 말건 일단 학생들의 논술이 완성되면 무조건 신문사로 보냈다. 학생 소속은 무조건 당시 일하던 학원이름 서울 학원이라고 했다. 그렇게 원고지에 쓴 논술을 모아 우편으로 신문사에 보냈던 것 같다. 아직 이메일로 그런 문서를 주고받지 않을 때였던 것 같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매번 서울학원의 아무개가 최우수 상을 받아 전문이 신문에 학생 이름과 전문이 신문에 실렸다. 학원 원장님이 너무나 좋아하셨다. 신문에 난 기사를 오려서 큰 전지에 붙이고 학원 문 앞에 매주 붙이셨다. 우수상 장려상 태반이 학원 아이들 이름이었다.
학부모님들과 학생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자신도 신문에 이름이 나오고 싶어 어려운 논술에 힘을 쓰기 시작했다. 논술 시간은 진지하고 열정이 넘쳤다. 나는 어느새 논술에 관한 유명 강사가 되었다. 부모님들이 과외 수업을 해 달라고 줄을 서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고등학교 입학을 하고 난 후 논술 그룹 과외 요청이 쇄도했다. 토요일 오후 아파트를 이리저리 헤매며 논술을 배우려던 학생들을 만났다. 그때 가르쳤던 대부분의 학생들이 원하던 명문대에 진학했다는 이야기를 후일에 들었다. 논술은 그때 배운 것이 기반이 되어 별다른 준비 없이도 잘 썼다는 인사도 받았다. 거의 30년 전이었다. 지금 불러도 비싸다고 할 만한 액수의 돈을 받았다.
혹독한 대학원의 문장 수업은 내게 고소득 수입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밉고 야속했던 교수님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다시 찾아가 인사를 드리지는 않았다. 내 마음이 원망에서 감사로 바뀐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몇 년 뒤 대학을 방문했다가 교내 서점에 가니 논문 지도 교수님이 내 논문을 바탕으로 교양 과목 책을 만들어 수업하고 있었다.
내 논문을 지도한 후 대화에 관한 교양 강좌를 열어 수업을 하고 계셨다. 그렇게 내용에 대해 혹독하게 보잘것없다는 평을 하시더니 정작 대화 수업까지 하는 걸 보니 웃음이 났다. 교수님도 내 논문에 도움을 많이 받았구나 싶어 감사했다.
교육 대학원에 익힌 가르치는 방법과 기술은 학원 수업에서 나에게 보람으로 되돌아왔다. 그때 가르치는 데에는 세세한 과정과 절차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익힌 덕분에 지금도 나는 가르치는 일로 세상을 돕고 있다.
논술을 가르치기가 너무 힘들었다. 매번 내용을 요약하고 학생들에게 이해를 시키는 과정이 힘에 겨웠다. 그래서 논설문 이해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찾았다. 마인드맵을 알게 되었다. 서울 본사에 찾아갔다. 소장님께 1:1로 마인드맵에 대해 배웠다. 글의 구조를 배웠고 핵심어를 통한 요약을 배웠다. 두뇌의 구조에 대해 알게 되었다. 논술을 가르치는 체계가 만들어졌다. 그렇게 마인드 맵 툴은 내 안으로 들어왔다.
나의 지적 자산이 되었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중요한 툴이 되었다. 학기를 마칠 무렵 학교에서 배운 과목 중 무엇이 제일 재미있었냐고 물어보면 거의 사회라고 답한다. 사회 과목에 나오는 여러 상황을 마인드 맵으로 그리게 한다. 목청 높여 설명할 필요 없이 학생들 스스로 배움을 이끌어 간다.
어둡고 긴 터널을 만난다. 하지만 반드시 터널 출구를 만난다. 1여 년이 넘는 백수 생활은 나를 또 다른 생의 출구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