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충동 그리고 찾은 삶의 의미
중학교 3학년이 된 나는 인생의 허무에 시달렸다. 하늘을 보아도 땅을 보아도 죽고 싶은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이렇게 사는 게 인생인가 싶었다. 그나마 타지의 좋은 고등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모른 체하고 나는 내가 사는 동네의 고등학교에 지원서를 냈다. 나중에 아버지는 나를 불러 호통을 치셨다.
“이런 인생의 중대사를 의논도 안 하고 혼자 결정을 했냐?”
정말 몰랐다. 아버지가 내 인생에 관심이 있다는 걸, 그리고 내가 진학의 문제를 부모님과 의논해야 한다는 걸 정말 몰랐다. 왜냐면 그때까지 살면서 부모님과 내 삶에 관해 의논이란 걸 해 본 경험이 없었다. 엄마에게는 늘 혼이 났고 아버지는 통지표 가져오면 90점 안 되는 점수만큼 때리는 것 외에는 삶의 간섭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진학에 관한 건 의논을 해야 하는 사안이라니 낯설었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기가 시작되고 계속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숨을 쉬면 명치끝에 뭔가 막혀 있는 느낌이었다. 몇 번을 말씀드렸더니 아버지는 나를 도시 병원에 데리고 가셨다. 서너 군데를 높은 빌딩이 있는 병원을 돌아다녔다. 병원마다 같은 병명을 말했던 것 같다. 신경성 위염 왜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이 신경성 위염에 걸렸을까?
찾아보았다. 신경성 위염은 기능성 소화불량이라고도 불리며, 기질적인 원인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상복부 답답, 속 쓰림 등의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흔히 발생하는 질환이지만, 뚜렷한 원인이 없고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증상이 있어도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 그로 인해 대부분의 환자들의 경우 증상이 좋았다가 나빠지기를 반복하게 된다. 선천적으로 위장의 기능이 약하거나 잘못된 식습관, 과도한 스트레스, 운동 부족, 음주, 흡연 등을 그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아마도 과도한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사실 엄마의 속사포 같은 매일 똑같은 잔소리와 꾸중을 듣는 일은 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깐 집중할 라치면 엄마는 내 이름을 계속 불러 잔 심부름을 시키셨다. 어떤 때는 귀가 안 들린다는 거짓말을 했다. 잠시도 앉아 있을 틈이 없었다. 그때는 소아 정신과도 없을 때였으니 약간의 우울증 증세를 신경성 위염이라 불렀을 것이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중학교 3학년 어느 일요일 점심이었다. 하도 악을 쓰며 방 내놔라 난리를 치니 짐을 쌓아둔 다락방에 선반을 만들고 짐 정리를 하고 책상이랑 간이침대를 짜 넣어 내 방을 만들어 주었다. 그 방에서 점심을 먹고 잠이 들었다. 동생들이 손님이 왔다고 알려주었다.
방에 들어온 친구는 나에게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하며 다짜고짜 교회에 가자고 했다. 얼떨결에 그 친구에게 이끌려 친구의 교회로 갔다. 그 교회에 내가 그토록 그리던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 손명현 선생님이 중학교 3학년 담당 교사로 계셨다. 나는 너무도 그리웠던 아버지 같았던 선생님을 만난 기쁨에 어쩔 줄 몰랐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선생님이 계신 교회에 매주 출석할 거라고.
그때부터 일요일이 제일 기다리는 날이 되었다. 삶의 허무도 사라져 버렸다. 나는 늘 그리던 손명현 선생님을 만나는 기쁨으로 일주일 동안의 암울함을 견뎠다. 선생님은 언제나 반응을 해 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무슨 질문을 해도 잘한다, 고맙다, 내가 오히려 부끄럽다는 말씀으로 응원하고 지지해 주셨다. 신경성 위염도 삶의 허무로 찾아오던 자살 충동도 교회에 다니면서부터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