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을 향해 도전하는 나 (6-1)

꿈은 이루어진다

by 소명작가

철들기 전의 일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 이혼하고 우리 집에 함께 살던 고모가 말했다.


“진아, 넌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라. 난 꿈이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는데 될 수가 없었어.”


그때부터 내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은 하나였다. 초등학교 여자 선생님만 존재했다. 학기 초에 쓰는 희망 직업란에 언제나 선생님이라고 적었다. 지금도 내게 의미 있는 직업은 오직 선생님이다.


그렇게 내 꿈은 세상을 경험하기도 전에 선생님으로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성적과 부합하는 인문대학에 진학하고 그 뒤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잠시 중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으로 일을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선생님의 꿈을 이룬 건 아주 우연한 만남으로 이루어졌다.


미국에서 상담학 공부를 하고 주변 지인들의 요청으로 상담 교육을 바탕으로 한 나눔 모임을 하고 있을 때였다. 광고를 보고 참석한 분이 미국에서 귀국하는 자녀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한국 학교 교사였다. 그분이 나에게 그 학교에서 중학교 3학년을 가르칠 국어 선생님을 찾는다고 이력서를 한번 써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중3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었다.


6년이 지난 어느 날 여름 방학에 교장 선생님의 전화가 왔다. 초등학교 3학년 선생님이 학교를 그만두었는데 혹시 그 자리를 맡아 줄 수 있냐는 제안이었다. 한국 교과서 국어 수학 사회 체육 음악을 기본 커리큘럼으로 하는 자리라서 국어 선생님이 제격이라 한 번 권유해 본다는 말씀이셨다.


잠시 고민을 안 한 건 아니지만 교장 선생님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날 내 페이스북에 이런 제목의 글을 올렸다. ‘꿈은 이루어진다’ 비록 토요일 하루 수업이지만 난 초등학교 3학년 선생님이 되었다. 대학원 진학을 위해 공부할 무렵 국문학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공부해서 대학교수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잠시였다. 그런 기회가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꿈꾸는데 돈이 드는 것 아니니까 공부가 좋았으니까 꿈을 꾸었다.


한국에서 잠시 견문을 넓히기 위해 나의 내면을 보는 작업이 좋아서 시작한 심리학은 어느새 미국에 와서 본격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맨해턴의 상담 연수 과정에 참여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Canada Christian College에서 공부할 수 있는 Christian Counselor 과정을 알게 되었다. 그 학교에서 세계 각 지역에 분교를 만들었는데 내가 살던 지역에 한국어 과정으로 그 과정을 개설했다. 3년 공부를 마치고 남편 귀국할 때 나도 학위를 갖고 입국하고 싶은 열망이 있던 터라 쉽게 입학을 결정했다.


공부는 역시 재미있었다. 세상의 심리학에 회의를 가지던 때라 신학과 상담을 재정립하던 커리큘럼이 너무 좋았다. 한편으로 한국에서 이미 성경적 상담학으로 여러 과정을 개설하고 강의하던 경험을 가진 지인이 나와 남편에게 전해준 성경적 상담은 내게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그동안 알아온 성경의 진리와 자신을 성경대로 분석해 성경적 사고와 회개로 새사람이 되는 경험은 그동안 내가 목말라하던 진리와 지식의 만남이었다. 나는 그때 배운 성경적 상담을 본격적으로 이론적 바탕을 정립하고 싶은 마음에 나의 상담학 박사 과정의 논문으로 주제로 성경적 상담학을 정했다. 어떤 과정을 통해 7단계를 통해 성경의 진리가 삶에 나오는지 그 학문적 과정과 가치를 논문으로 입증하고 싶었다.


박사 과정 지도 교수님은 그 당시 상담 센터를 운영하는 원장님으로 정해졌다. 교수님이 내 이론을 보시더니 미국 논문은 이론만으로는 안 된다. 이 이론으로 실습을 해서 사람들의 변화 과정을 논문에 넣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맞는 말씀이셨다. 세상의 아무리 훌륭한 이론이라 해도 실제로 쓰이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나는 내 논문의 주장과 이론으로 소모임을 할 수 있는 12주 틀로 완전히 새로 자료를 정리했다. 모임 인도용으로 만든 논문을 교회 청년부원들을 대상으로 교육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변화 측정을 위한 설문 조사 틀을 만들고 매주 서면 조사를 통해 의식의 변화를 정리하고 서술하는 과정은 복잡하고 험난했다. 고난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성공했다. 교수님은 내가 이론을 정리하고 실습하고 자료 조사하는 과정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 덕분에 난 무사히 학위를 받고 졸업을 했다.


학위를 끝냈다고 해서 나의 삶의 진로에 그대로 상담학 학위가 사용되지는 못했다. 매달 지불해야 하는 월세와 생활비 조달을 위해 생업으로 나서야 했다. 내가 무슨 공부를 했건 어떤 경력이 있건 매달 상상 초월의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몇 년 후 내가 졸업한 대학의 상담 대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상담 대학원에서 성경적 상담학 과목을 개설하고 싶은데 그 과목을 맡아 강의해 줄 사람을 찾는데 내가 적임자라는 추천을 받고 연락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도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자리 경험을 할 기회가 드디어 생겼다.


첫날 수업하러 갔는데 학생들은 그들보다 어려 보이는 나를 무시하는 태도가 역력했다. 특이한 삶의 이력을 지닌 분들이 많았다. 한의학 공부하시는 분, 장애인 아들을 데리고 미국에서 함께 공부하시는 분, 한국에서 이미 교수를 하시던 분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계셨다.


기가 눌리지 않았다. 나만의 호기로 수업을 진행했다. 지각이 일상이던 분들에게 정면으로 한마디 했다. 이런 태도로 앞으로 상담자의 삶을 살지 못한다고, 상담자의 삶은 생각만큼 편한 삶이 아니라고 30분 전에 도착해 커피를 내리는 것이 시작인데 이렇게 지각을 해서 어떻게 그 일을 할 것이냐고 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몇 명이 오건 정시에 수업을 시작했다. 지각이 사라졌다. 자신들 스스로 놀라워했다. 내가 나눈 성경적 상담을 경험하며 그 이론의 효과를 본인 스스로 느끼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더 지도를 받고 싶은 사람들의 요청도 많았다.


그 뒤 원장님이 건강상의 이유로 학장의 자리를 내려놓음으로 나의 짧은 교수 생활은 끝났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소망이던 교수의 삶도 짧은 세 학기였지만 경험했다. 꿈을 꾸면서 스스로도 설마 하던 모든 꿈은 실현되었다. 난 앞으로도 소설 같은 영화 같은 내 삶의 꿈을 꿀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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