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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명작가 Mar 05. 2024

Running Novelist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꼴찌로 대학에 합격했다. 추가 합격이었다. 학번도 50명 정원에 52번이었다. 혼자만의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대부분 그 학번이 뭘 의미하는지 동기생조차 잘 몰랐다. 시골에서 통학하던 나는 온 세상 수치와 열등감을 다 짊어지고 대학에 다녔다. 아침에 눈떠서 학교를 가는 일이 내겐 고역이었다. 고등학교와 달리 혼자 어딘가를 찾아 수업을 듣고 그 넓은 교정을 아는 사람도 없이 돌아다니고 멀미 나는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일은 내게 심적으로나 육적으로나 버거운 일이었다. 친구를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그래서 모든 게 우울한 대학 생활의 출구로 선택한 것이 피아노 레슨을 받는 일이었다. 동네 어귀를 돌면 유리문 입구에 피아노 하고 적혀 있는 집에 문을 두들겼다. 새벽 6시에 레슨을 받았다. 매일 그곳에 새벽 6시면 학원 문을 두드리고 바이엘부터 착실하게 배웠다. 아침에 눈 뜨는 일이 피아노 때문에 즐거웠다. 아버지도 1학기 마치고 받아온 장학금 때문에 기특하다며 피아노를 사주셨다. 


체르니 백번 소나티네를 치고 체르니 30번으로 넘어가자 피아노에 소질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30번에 2번 칠 때 결단을 했다. 그만두기로. 그만두는 동기 밑바닥에는 더 이상 낯선 대학교 생활에 웬만큼 적응을 했기 때문이었다. 넓은 교정을 헤매는 일도 웬만히 적응을 하고 친한 단짝 친구도 한 두 명 생겼다. 더 이상 학교 가는 일이 고역이 아니었다. 피아노 레슨의 즐거움에 기대지 않아도 될 만큼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은 학교 등교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피아노에 소질이 없다는 핑계를 찾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게 아버지한테나 나한테 더 합리적인 명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정말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학에 들어간 성인이 대학 생활의 부적응을 피아노 레슨으로 대치한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우습다. 세상을 배우고 경험해야 할 시절 나는 나를 축소시키기 위해 동네 피아노 교습소로 향한 것이다. 불편한 내 마음 하나 붙잡으려고 피아노 교습을 선택한 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이었는지 지금은 보인다. 사람을 만나고 영어를 공부하고 전공의 실력을 높여서야 하는 중요한 시기였다.  



아마도 그때부터 나의 양다리 아니 문어발 뻗기처럼 이것저것을 함께 하는 생활이 시작된 듯하다. 미국에 와서도 월요일은 대학원 수업, 화요일은 네일가게, 수요일은 강의, 목요일은 휴일, 금요일은 네일가게, 토요일은 한국학교 매일 하는 일이 다른 삶을 살았다. 한 곳에 도통 집중하지 않는 삶이 습관처럼 붙었다.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어 가면서 가장 마음을 친 구절은 사람은 어떻게 해서 달리는 소설가가 되는가 하는 장에서 나온 구절이었다. 하루키는 대학을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낮에는 커피를 팔고 밤에는 바 (BAR)로 영업을 하는 가게를 열었다. 음식도 대충 팔고 주말에는 라이브 연주를 하는 가게를 열었다. 장사는 그런대로 되었다. 그는 그 가게가 잘 된 이유를 이렇게 표현했다. 







서른 살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젊은이라고는
 할 수 없는 나이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로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솟아났다. 

가게를 경영하고 나 자신도 매일 카운터에 자리를 잡고 칵테일이나 요리를 만들고, 한 밤 중에야 가게 문을 닫고 집에 돌아온 후, 부엌 테이블에 앉아서
졸음이 밀려올 때까지 원고를 쓰는 생활을 3년 가까이 계속했다. 
나는 더욱 스케일이 튼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한 끝에 가게를 일단 접고 일정 기간 소설 집필에 전념하기로 했다.
그 시점에서는 소설가로서의 수입보다 가게에서 나오는 수입이 컸지만
그쪽은 큰맘 먹고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가령, 무슨 일이든 뭔가를 시작하면 그 일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정을 못 찾는 성격이다.
가게는 적당히 누군가에게 맡기고 자신은 다른 곳에서 소설을 쓴다고 하는 그런 재주를 부리는 일은 아무래도 할 수 없었다.
전력을 다해서 매달리고 그리고 잘 되지 않으면 단념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어중간하게 하다가 실패한다면 두고두고 후회가 남을 것이다. 그래서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게의 권리를 모두 양도하고
약간 겸연쩍기는 했지만 소설가라는 간판을 걸고 살아가기로 했다.







내가 살아오면서 인생 가운데 절대로 쓰지 않았던 두 단어가 보인다. 전념하기로 했다. 전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정을 못 찾는 성격이다. 



나는 적당히 살았다. 적당히 내 삶에 찾아오는 불안과 내가 하고 싶은 일 사이에 접점을 두고 요일마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적당이 분배하며 살았다. 그것이 지혜라고 생각했다. 그건 하루키의 단어를 빌어오지 않더라도 그런 삶은 지혜로운 삶이 아니라 재주를 부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루키의 표현이지만 자신 스스로 재능은 없지만 전력을 다했던 소설가의 삶은 성공을 거두었다. 서양 소설가들만 이름을 올리는 그 세상에 당당히 동양인으로 세계적인 소설가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는 지금도 신간을 내면서 달리고 있다. 극한의 달리기를 매일 하고 있다.  



어린 시절 사는 것이 힘에 겨울 때 일본 소설가 미우라 아야꼬의 소설을 읽으며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 그 작가 덕분에 소설가라는 꿈을 꾸었고 전공도 국어 국문학을 선택했다. 소설가가 되어 내가 받았던 위로와 격려를 나도 그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미국에 온 이후로 생존의 삶에 눌려 소설가라는 꿈마저 잊고 살았다. 



이제 삶이 완숙을 향해 나아가는 시점이다. 더 이상 젊은이가 아니다. 나도 삶의 결과물 앞에 서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소설가라는 꿈이 움틀댄다. 아직도 소설가를 꿈꾸기엔 미숙하지만 작가를 꿈꾸며 매일 글을 쓰는 중이다. 아직은 소설가가 되기엔 멀고 요원한 글실력이다. 



이즈음에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는 중이다.  나도 이제 적당히 재주를 부리는 삶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스스로 반문하게 된다. 전력을 다해 달리던 하루키가 다행히도 보이고 그 단어에 마음을 사로잡힌다. 



나도 전력을 위해 뭔가 결단할 시점이 내 앞에 있다. 나는 불안 지수가 높다. 그래서 쉽게 결단할 위인이 못된다는 걸 나는 안다. 나를 다그치는 건 싫다. 적어도 이 나이쯤 되고 보니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하지만 내 안의 결심이 서는 어느 날 나도 작가로 소설가로 전력하는 삶을 살아야 지하는 풋사과 같은 시큼한 결심을 오늘 나 자신에게 해본다. 이 책 덕분에 



말하기 부끄럽지만 난 하루키의 소설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수필만 세 권째 읽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도서관에서 빌려온 <상실의 시대>를 곧 읽어봐야겠다. 왜 그를 세계적이 소설가로 지칭하는지 나도 알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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