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자르에 아침은 주인을 기다리는 물건들을 단장하는 상인들에 손길만이 분주할 뿐 거리는 한산했다. 화려한 레이스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터키는 이네오얏(가느다란 색색에 면 실을 이용한 크로셰 )이라는 스카프 테두리 장식이 유명하지 않은가. 오얏 특유에 색감과 섬세함은 보는 이를 감동케 한다. 뜨개 러버들은 이렇게 뜨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바자르엔 관광객을 겨냥한 듯 화려한 하얀색 도일리가 눈에 많이 띄었다.
바자르를 둘러보던 중 길 한복판에 자리 잡은 좌판이 눈에 들어왔다. 상점과 달리 털실을 이용한 아기 옷가지 며 덧신이 빈약하게 펼쳐져있었다. 검은 스카프로 감춘 얼굴 사이로 드러난 검은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 하고 흘릴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바빠졌다. 대충 훌터 본 후 검은색 덧버선을 주워 들었다. 그리고 돈을 지불하고 돌아서자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남자에 큰 목소리가 들렸다. 뒤 돌아보니 나에게 물건을 판 여인이 좌판 보자기를 정신없이 챙겨 들고 쫓기듯 빠른 걸음으로 바자르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버스로 돌아와 덧신을 살펴보았다. 검은 바탕에 선명한 색에 꽃을 함께 떠나간 덧신. 털실 본연에 푸근함은 사라지고 실 굵기보다 한참 얇은 바늘을 이용했는지 뻑뻑한 촉감이다. 덧신 안쪽 실 마무리가 조악한 매듭인 것을 보니 진정 관광객을 위한 제품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기대 없이 생활이 어려운 이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마음으로 샀던 거라 아쉬움은 없었다. 어깨가 빠져라 뜨개질을 하고 관광버스 도착시간에 맞춰 이른 아침 물건을 챙겨 들고 길을 나선 그녀에 수고를 생각하면 숙연해지기까지 하다. 시간과 노동을 당장 빵과 바꿔야 하는 이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꼭 선택돼야 하기에 꾹꾹 눌러 뜬 정성이 전해진다.
터키에서 구입한 덧버선 암담한 현실에도 꽃은 선명하고 화려하다. 생명력이 느껴진다.캐나다 여행 중에 구입했던 덧버선이 문득 떠오른다. 몬트리올에서 퀘벡을 향하던 고속도로변 우연히 들른 휴게소엔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위도가 높아 한 여름에도 서늘하지 않을까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더위를 식힐 겸 아이스크림을 물고 천천히 좌판을 둘러보았다. 빈티지스러운 단추, 천, 리본 같은 수예용품 사이로 투박한 덧버선이 보였다. 사이즈가 너무 커 남자 어른 한 테나 맞을 것 같다. 여름은 짧고 겨울은 긴 나라임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여러 겹에 실을 겹쳐 떴지만 폭신하고 부드럽다. 실 사이로 공기를 머금어 신고 있으면 금방 따듯해질 것만 같다. 위도가 훨씬 아래인 동경에선 필요치 않겠지만 재미있는 뜨개질이라 냉큼 집어 들었다.
자연이 넘치는 촌락 그 누군가 천천히 떴을 덧버선.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펼치는 벼룩시장은 타 지역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장사보다 더 쏠쏠하지 않았을까 싶다. 겉 멋든 도시 머저리들이 빈티지네 뭐네 하며 폐기물에 가까운 물건에 기꺼이 돈을 지불하니 말이다.
퀘벡지역은 프랑스어 권역이라 곳곳에 성당이 널려 있다. 성당에 스테인드 글라스를 연상시키는 무늬다. 솜씨가 좋은 니터에 작품임에 분명하다.
본 적 없는 두 명에 니터를 본의 아니게 비교하게 되었다. 그들이 만든 덧버선만 보아도 웬지 그들에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손은 마음을 보여준다. 마음이 편한 상태에서 뜨면 푸근하게 떠지고 바쁜 마음으로 뜨면 뜨개질에 코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게 된다. 코를 빼먹거나 무늬에 순서가 틀리면 조용히 바늘을 내려놓는 게 최선이다. 내 마음은 더 이상 바늘 끝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절실한 현실을 위해 뜨개질을 하든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뜨개질을 하든 바늘을 움직이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집중해야만 하는 게 뜨개질이다. 이런저런 고민을 내려놓고 바늘을 움직여야만 한다. 생각을 접고 한참 숫자를 세며 뜨개질을 하다 보면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분명 순서와 개수를 세느라 머리를 많이 썼을 것 같은데 말이다.
뜨개질은 나 자신에 거울 같다. 같은 실 같은 바늘임에도 천인 천색인걸 보면 말이다. 내 뜨개질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나를 비추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