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세월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30여 년 전 캠퍼스에서 마주친 꽈배기 무늬가 복잡하게 수놓아져 있던 크림색 카디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뜨개질을 시작하게 된 여러 동기중 하나가 바로 크림색 카디간을 스스로 떠 보고 싶어서였다.
첫눈에 반한 크림색 카디간은 제주도 '한림 수직'에서 제작되었다. 한국 전쟁에 상흔이 그대로 남아있던 1950년대 말 맥그린치 신부가 카톨릭선교를 위해 멀리 아이랜드로부터 제주도를 찾아왔다. 그리고 제주 한림에 '이시돌 목장'을 세워 주변 농민들을 돕기 시작했다. 당시 목장엔 털을 깎을 수 있는 면양도 사육되었다. 수확한 양털은 털실이 되어 자연스레 뜨개질로 이어졌다. 가난한 제주 여성 농민들에게 뜨개질로 얻는 현금 수입은 대단한 것이었다.
한림 수직에서 제작된 스웨터와 담요는 수출되기도 하고 국내에서 판매되기도 하였다. 특히 제주도 지역에서는 한림 수직에 스웨터와 담요가 빠져서는 안 될 혼수품목이었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1960년대부터 이어졌던 한림 수직은 2004년 문을 닫게 된다. 그리고 질 좋은 손뜨개 작품을 돈을 주 고살 수 있는 기회 역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한림 수직에서 제작된 스웨터를 뜨기 위해 여러 서적을 뒤져 보고 아직도 한림 스웨터를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부탁해 실물을 살펴보기도 하였다. 이런저런 서적을 찾아보다 맥그린치 신부가 왜 한국에선 생소한 면양을 기르고 뜨개질을 이용한 사업에 몰두했는지 알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세기 말 대기근과 20세기 초 반 두 차례에 세계 대전을 겪으며 아일랜드는 긴 시간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렇다 할 산업이 없는 상황에서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면양은 아일랜드에 또 다른 기회가 되었다. 아일랜드엔 오래전부터 털실을 이용한 뜨개질 전통이 있었다. 우리가 꽈배기로 알고 있는 무늬는 아일랜드에서도 궁벽한 섬, 애런섬의 꽈배기다. 애런섬은 한림 수직에서 제작한 것과 같은 스웨터를 대량 제작해 유럽 미국 등지로 수출을 하는 가내수공업이 번성한 대표적인 지역이었다. 지금 우리가 다양한 꽈배기 무늬를 애런 무늬 또는 일본어 발음 아랑 무늬로 부르는 이유는 애런 섬이 만든 꽈배기 무늬 스웨터가 여러 곳으로 수출되어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에 성공적인 가내 수공업 손뜨개 스웨터 성공사례는 맥그린치 신부에게 영향을 끼쳤으리라 본다. 제주도에서도 애런 섬과 같이 한림 수직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시간에 차이만 있을 뿐 아일랜드에서 그랬듯 한림 수직도 산업회에 밀려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
1960년 대에 들어오면서 아일랜드에 가내수공업 스웨터는 급속히 쇠퇴하기 시작한다. 산업화로 사람에 손에 의지하는 손뜨개보다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기성복이 더 경제적이었기 때문이다. 가격경쟁력보다 더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사람들이 은연중에 공장에서 기계로 만든 제품은 우수하고 가내 수공업으로 사람에 손으로 만든 제품은 열등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에 따라 당황스러운 표현은 다를 수 있다. 누군가 내 뜨개 작품을 보고 '기계로 짠 것 같다'는 표현을 할 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표정관리가 안돼 곤한다. 손뜨개에 대한 오명(가난과 무지의 결과 집에서 돈벌이를 위해 밤낮없이 쭈그리고 앉아하는 중노동) 은 오늘날에도 뜨개 러버들을 불편하게 한다.
애런 무늬나 스웨터가 너무 유명해 일본에 다큐멘터리 기자도 손뜨개 작가도 애런섬을 찾았지만 애런 스웨터에 흔적은 관광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기계로 뜬 값싼 스웨터뿐 명성에 걸맞은 애런 스웨터를 기억하고 제작하는 사람은 섬 전체에 노부인 한 사람뿐이었다고 한다. 애런섬에 한 번 여행 가고 싶었는데... 안타깝다.
생각보다 아주 빨리 가내수공업 형태에 뜨개질이 사라졌다.
그런데 어딜 가나 옷이 넘쳐나는 세상에 사람들은 이 비효율적인 뜨개질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1930년대부터 주부와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한 손뜨개(니팅) 패턴을 잡지 형식으로 발행하던 미국 뉴욕 '보그 니팅'은 1969년 폐간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1980년 대 들어서며 패션쇼에 손뜨개 작품이 선을 보이기 시작하며 손뜨개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2년 보그 니팅은 다시 발행되기 시작했다.
기억을 살려 떠 본 한림 수직 스타일 래글란 카디간. 완벽히 재현하기보다는 현재에 시점에 맞게 재구성했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다시 한번 사람들이 뜨개질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가내 수공업이 아닌 순수 취미에 영역으로 말이다. 위에 사진은 뜨개질을 배우게 된 계기 중 하나였던 한림 수직 카디간을 내 나름 제작해 본 것이다. 한림 수직 스웨터를 가지도 있는 분이라면 많이 다르다고 느낄 것이다. 사람에 손으로 만들다 보니 똑 같이 만들 수는 없다. 손뜨개는 한 작품 한 작품 다른 표정을 가지고 있다. 실이 다르고 뜨는 사람에 손이 다르기 때문이다. 진정한 손뜨개에 매력이 바로 이런 게 아닌가 싶다.
한림 수직 카디간은 한 겨울 외투로 입어도 될 정도로 두툼한 편이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말 그대로 카디간이다. 사진에선 잘 보이지 않지만 셀틱(북유럽)스런 무늬에 철제 단추를 사용했다. 한림 수직 카디간은 코바늘로 뜬 싸개 단추를 사용했었다. 카디간에 애런 무늬는 한림 수직 그대로다.
세월이 흘러도 크림색 카디간은 예쁘다, 허락도 없이 내 맘대로 만들어 버렸지만 말이다. 우여곡절을 거쳐 다시 뜨개질로 돌아온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틈틈이 뜨개질을 했던 지난 10여 년 드디어 첫사랑을 찾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