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셰 이야기

크로셰에 시작

by 박도연
DSC00875.JPG 최근 출판된 크로셰 도일리 책. 143개에 패턴이 실려 있단다.

기온이 슬금슬금 올라간다. 겨울실을 정리해 선반 위에 올려 놓은지는 오래다. 한구석에서 잠들어 있던 면실들을 챙긴다. 작품을 뜰 때 실이 부족한 것보다 남는 게 낫다고 여기는 난 늘 넘쳐 나는 여분에 실로 가끔 몸살을 앓는다. 사진에 예쁘게 나온 실들도 작품 뜨고 남은 실이다.

뜨개질이라는 표현이 대바늘(knitting)에 가까운 표현이라 크로셰로 옷을 뜬다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하는 이들도 없지 않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크로셰는 인테리어 소품, 도일리나 커버, 인형 등을 제작하는데 많이 쓴다. 특히 여름 실은 그렇다. 하지만 한여름 바람이 솔솔 통하는 성근 무늬에 면 카디간이나 볼레로는 모두가 사랑하는 패션 아이템이다.


실을 챙기다 문득 이 크로셰는 언제, 누가 시작했을까라는 소박한 의문이 들었다. 책도 뒤져 보고 인터넷 검색도 해보았다. 결론은 언제 어디서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겠단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세상엔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여러 장르에 문화유산이 존재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특히 여성들이 많이 종사한 공예에 경우 문자화 되지도 못한 체 그냥 사라지거나 저평가된 경우가 종종 있다. 이제야 뜨개질 분야는 조금씩 그 예술성과 문화에 대해 눈을 떠가고 있지만 말이다.


1800년대에 들어서야 '크로셰'라 불리며 크로셰 레이스 뜨기가 유럽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시작은 1700년대 중국에서 들어온 tumbour(자수에 한 형태. 사진으로 보았을 때 펀치 니들과 유사해 보였음)가 그 기원이지 않을까 한단다. 바늘에 형태가 크로셰 바늘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러나 1800년 대에 처음 옷에 테두리 장식으로 크로셰 레이스가 등장한다. 그 후 영국에 엘레노아 리에고 드 라 프란샤데르 라는 귀부인이 1846년부터 1887년까지 100권 정도에 크로셰 책을 발간하여 크로셰는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다.


그런데 이 크로셰가 대중화될 수 있었던 데에는 아일랜드에 1846년 대기근과 연관이 있다. 아일랜드는 뜨개질과 참 밀접하다. 한국인이 사랑한 한림 수직에 스웨터도 아일랜드에 뿌리를 두고 있다. 기근이 들자 여성 농민들은 가내 수공업으로 몰리게 된다. 수도원 수녀들에 지도를 받아 크로셰 레이스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그전까지 크로셰는 자수와 더불어 귀부인들에 손놀이에 지나지 않았다. 르누아르에 '뜨개질하는 아가씨'는 크로셰를 하고 있다. 은색 바늘로 레이스를 뜨기에 집중하는 아가씨의 모습이 관능적이면서도 아름답다. 왠지 한국어 번역이 잘못된 것 같다. 그냥 '레이스 뜨는 아가씨'라 하지...


크로셰라는 이름은 불어에 갈고리, 걸다는 뜻을 갖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하는 크로셰는 '아일리쉬 크로셰'다. 심이 되는 실을 넣어 도드라지게 뜬 레이스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케 하기 충분하다. 옷을 뜨는 뜨개질로 크로셰를 배워 레이스 뜨기 같은 50번 60번 사(번호가 커질수록 실이 가늘어짐)는 나의 영역이 아니다. 위에 사진에 등장한 실들은 20번 사에 해당하는 에미그랜드라는 이름에 실이다. 레이스 0번 바늘에 적합하다.


DSC00887.JPG 에미그랜드 실로 뜬 크로셰 카디간.


파인애플 무늬를 좋아해 카디간을 온통 파인애플로 채웠다. 스스로 도안과 제도를 해 만든 작품이다. 무늬도 살려야 하고 몸에도 잘 맞아야 하니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힘들게 만들어서 그랬나 정말 잘 입었다. 세월에 떼가 많이 묻었다. 벌써 6년에 세월이 훌쩍 넘었으니...

간절기용 면 카디간이 낡아 새로 뜰까 하고 찾아보니 마무리 짓지 않고 넣어둔 볼레로가 튀어나왔다. 올 해는 볼레로로 만족하고 차분히 도일리나 떠야겠다. 매듭짓지 못한 프로젝트 가방(뜨고 있는 작품에 실과 바늘 도안을 분류해 넣어 놓은 가방)에 숫자가 하나, 둘, 셋... 천수관음 팔이 많이 달려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욕심 껏 뜨개질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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