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인복의 항로를 수정합니다
"얘는 진짜 인복을 타고난 것 같아. 무슨 복일까?"
카페에 앉아 SNS를 넘겨보던 친구가 말했다. 이제 막 추위에 얼었던 몸이 녹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친구의 시선이 멈춘 화면 속에는, 주변에 사람들이 잘 모이는 한 사람이 있었다.
특별히 애를 쓰지 않아도 주변에서 먼저 챙기고, 사람들이 따르는 지인은 늘 인기가 많은 이였다. 관계 유지에 크게 힘을 들이지 않아도, 그녀의 곁에는 늘 사람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흔히 이런 사람들을 보며 '인복(人福)을 타고났다'라고 말한다.
그 운을 타고나지 않은 이들은 좋은 사람을 곁에 두려 애쓰다, 결국 '너부터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조언 앞에서 길을 잃는다.
하지만 좋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진짜 힘은 내가 가진 '선량함'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내가 나를 어떻게 정의하고 대우할 것인지에 따른 태도에서 나온다.
타인의 무례함은 종종 주인이 먼저 허용한 신호에서 시작된다. 내가 나를 예우하는 기준이 낮아지는 순간, 상대에게도 나를 그렇게 대해도 좋다는 무언의 허락이 떨어진다.
본래 갖고 있는 가치보다 그것을 대하는 소유자의 태도가 그 물건의 진짜 가치를 결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서툴 때, 가장 좋은 가이드라인이 되어주는 건 내가 나를 아끼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인이 세운 '귀함의 척도'가 타인의 눈에 비치면, 그에 걸맞은 정중함을 자연스레 끌어내기 때문이다.
사람 사이의 인복도 이 지점에서 결정된다고 믿는다. 그러니 선량함의 정도를 가늠하기 전에, 나를 귀하게 여기는 태도부터 갖추자.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려 애쓰는 사람보다, 스스로를 돌보고 아낄 줄 아는 사람에게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끌린다. 결핍을 채워달라며 내미는 손보다, 이미 스스로 충만한 사람 곁에서 안온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복은 하늘이 내려주는 거창한 운명이 아니라,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 맞춰지는 주파수와 같다. 내가 나를 귀하게 여길 때, 타인도 나를 귀하게 여긴다는 이 당연한 순리는 결국 좋은 사람을 머물게 하는 가장 따뜻하고 지혜로운 진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