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 뒤에는 지극한 사랑이 있었다.
바람 따라 떠나는 풍향고2가 돌아왔다. 이번 여행지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예약도, 어플도 없이 무작정 떠난 네 남자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2시간 가까이 되는 영상이 짧게 느껴진다.
상황에 따른 제작진의 최소 개입을 원칙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몸으로 직접 부딪히는 그들의 여행은 지독히도 현실적이다.
긴장감 넘치는 입국 심사부터 기차표를 발권하기 위해 우왕좌왕하는 순간까지. 그 생생한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나의 첫 유럽 여행이 떠오른다.
모든 걸 빈틈없이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영어 회화를 유창하게 구사해야만 여행이 무탈할 줄 알았고, 괜히 감정 상하는 일을 경험하기 싫어 마트를 가도 구글 후기를 찾아보고 갔다. '완벽주의'는 여행의 설렘보다 몸을 굳게 만드는 긴장감으로 나를 물들였다.
왜 그렇게까지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고 애썼을까. 돌이켜보면 그건 나를 향한 지극한 애정 표현이자 자기 보호였다. 내 삶이 늘 무탈하고 안온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보호라는 이름 아래 '완벽'이라는 갑옷을 입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완벽주의 성향은 결국 나라는 존재를 극진히 대접하고 지키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게 흐르지 않는다. 첫걸음마를 떼는 아이가 수없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근육을 키우듯, 우리네 인생도 예상치 못한 변수 속에서 성장하고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풍향고2 출연진들의 유쾌한 기세를 보고 있으면, 건강한 자기 보호와 애정의 형체가 선명해지는 기분이다.
슈테판 대성당의 웅장함을 감상하기보다 다음 여정을 위해 감각을 곤두세웠던 날들. 벨베데레 미술관의 작품보다 티켓 발권을 앞두고 긴장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때의 나에게 필요했던 건 빈틈없는 완벽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즐거움을 잃지 않는 여유와 여행의 본질을 잃지 않는 태도였다는 걸 깨닫는다.
애쓰지 않아도 우리는 여전히 근사하고, 힘을 뺄 때 비로소 나다움을 펼칠 수 있다. 풍향고 출연진들의 유쾌한 태도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세련된 자기 보호이자 애정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든 여행이든 모든 과정은 나를 증명해내야만 하는 시험대가 아니다. 변수에 가로막힐 때마다 해결 방법을 찾아가며, 그 반복 속에서 조금씩 단단해지고 나다워지는 한 편의 여정일 뿐이다.
흙탕물에 발이 좀 빠지면 어떤가. 머드팩이 그렇게 좋다는데, 공짜 팩을 한 셈 치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카페 웨이터가 주문을 받을 생각이 없다면 또 어떤가. 가뜩이나 외식비도 빠듯했겠다, 눈치 안 보고 쉬다 나오면 그만이다.
변수에 맞닥뜨려도 나의 가치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확신. 어떤 상황에서도 나와 내 곁의 사람들에게 다정함을 잃지 않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나를 위한 가장 적극적이고 건강한 보호이자 애정 표현이다.
오늘도 화면 속 네 남자는 바람 따라 길을 잃고, 서툰 영어로 상황을 돌파하며 오스트리아를 만끽하고 있다. 그들의 거침없는 기세가 내게도 좋은 바람을 불어넣으며 활력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