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무게를 덜어내는 법

그의 날 선 태도는 나의 것이 아니다

by 윤서






포르투갈을 여행하다 보면 기념품 가게마다 푸른 눈알들과 마주하게 된다.


'눈'이라는 단어로 부르기엔 지나치게 기이하고 강렬한 눈빛이라, '눈알'이라는 거친 표현이 더 잘 어울릴 정도다.


팔찌나 장식으로 만들어져 몇 유로면 살 수 있지만, 그 집요한 응시 앞에서 지갑은 선뜻 열리지 않는다.


마주 보고 있으면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왜 이 나라는 이토록 푸른 눈에 진심일까. 숙소에 돌아와 찾아보니 이는 '나자르 본주'라는 이름의 부적이었다.


타인의 시샘이나 질투가 가져오는 불운을 막기 위한 장치로, 지중해에서 시작된 오랜 미신이 대서양 연안까지 흘러온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의 시선이 나를 해칠 수 있다는 원초적인 두려움이 그 푸른 눈에 응축되어 있었다.


타인의 시샘과 질투를 신경 쓰는 건 국적과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그 의미를 알고 나니 기괴함은 옅어지고, 흥미가 남았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시선 속에서 살아간다. 회의실에서, 관계의 한가운데서, 혹은 스쳐 지나가는 표정에서.


수많은 시선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따뜻한 호의와 무관심, 이유를 알 수 없는 다양한 날카로움 들을 마주한다.


좋은 시선은 상관없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냉소적인 시선은 곧잘 상처가 되기도 한다.


예전에는 그 이유를 나에게서 찾곤 했지만, 요즘은 그저 그런 태도가 있다는 사실만 인식할 뿐 나에게로 끌고 오지 않는다.






상대방의 날카로운 시선은 대부분 나와 상관없는 일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그의 컨디션이 바닥이었거나, 감당하지 못한 감정을 밖으로 표출한 것일 뿐. 날 선 태도는 결국 상대의 문제고, 시샘과 질투는 현재 그가 겪고 있는 불편함에서 나온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타인의 냉랭함에 굳이 위축되거나 마음 다칠 필요가 없다. 상대가 못 견디고 흘린 감정을 굳이 내가 품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상대의 날 선 태도를 통제할 수는 없지만, 나의 행동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그의 시선에 반응하지 않는 것. 나를 간과하지 않는 것.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며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는 것.


냉소적인 시선 앞에서 필요한 힘은 상대의 감정을 동요 없이 얽어내는 통찰력과, 나를 지키는 무심한 단단함이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은, 어쩌면 내 삶의 균형과 풍요가 한순간에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불안에서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불안의 실체를 알고 나면 더 이상 나자르 본주는 필요하지 않게 된다. 나에게 필요한 건 나를 대신해 깨져줄 푸른 부적이 아니라, 어떤 시선 앞에서도 유연하게 나를 지켜내는 단단한 태도니까.


결국 나를 지키는 힘은, 푸른 눈이 아닌 내 안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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