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같았던 감사 일기를 끝내고
아프지 않아서 감사하다.
오늘을 시작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바쁜 아침. 휘리릭 적던 감사 일기가 어느 순간 멈춰 있었다. 진심 없는 인사가 비슷한 패턴으로 이어지고, 끝내 살아있음에 감사하다는 거창한 말까지 담고 나니, 일기는 완전히 내 손을 떠나 있었다.
형식적인 얘기로 가득 채워진 일기장은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최근, 다시 적히기 시작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욕심을 내려놓고, 거창한 기적을 바라지 않으니 나름의 페이스가 만들어졌다. 비로소 진심이 담긴 사소한 감사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감사일기를 처음 적기 시작한 것은 '성공'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하루에 세 번 감사한 순간들을 적는다기에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나 욕심에서 출발한 열망은 감사 일기의 진짜 효능을 보여주지 않았다.
흔히들 말하는 하루하루가 애틋하고 소중해서 모든 게 다 감사하다는 말은, 어쩌면 고도로 수행된 이들의 영역일지도 모른다.
아직 그 경지에 닿지 못했지만, 달라진 점은 분명히 있었다.
감사 일기를 적으면서 가장 많이 변한 건, 환경이 주는 스트레스에 이전만큼 흔들리지 않게 된 것과 포용력이 커졌다는 것이다.
세상에 원하는 것은 많지만, 모든 바람이 다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나를 몰아붙이기보다 '인연이 닿으면 나에게 오겠지.'하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꼭 타야 할 버스를 놓친 날에도 모든 상황을 탓하기보다, 지금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나와 상황을 포용하고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는 유연하고, 넉넉한 공간이 마음에 생긴 것이다.
일상에 숨은 사소한 감사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 모든 것을 일기에 꾸준히 '나열'할 때가 아닌, 경험 속에서 스스로 체득할 때 태도의 변화도 찾아온다.
'아, 다행이다.', '이거 진짜 감사하네.'라며 무릎을 탁 치는 순간마다 불안은 낮아지고, 스트레스는 줄어든다. 나에게 보내는 유연함과 다정함이 그 자리를 채우며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이다.
본능과 환경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며 살던 상태에서, 가치관에 따라 선택하는 삶은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준다.
비록 감사 하나로 삶이 성공 가도에 올라가지도, 화려하게 바뀌지도 않지만, 세계가 넓어지고 스스로에 대한 인정과 애정은 단단하게 쌓인다.
이제 나는 매일 아침 세 가지 빈칸을 채우려 고군분투하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틈에서 찾아오는 '다행'과 '감사'의 순간들을 느끼며, 내 페이스에 맞춰 하루하루 살아간다.
기적처럼 원하는 일들이 모두 이루어지지 않아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나를 비추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이미 모든 게 충분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