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같이 살게 된 두 아이는 한동안 이름이 없었다. 누군가는 꼬물이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아가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개새끼라고 부르는 둥 저마다의 시선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 그랬던 아이들이 이름을 받게 된 건 꽤 자란 아이들이 갑갑한 박스 안에서 제멋대로 탈출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던 때의 어느 여름 날이었다.
'이제 슬슬 얘들도 이름을 지어줘야 하지 않겠니?' 라고 운을 띄운 어머니의 발언을 기점으로 우리 가족은 저마다 다양한 의견을 냈다. 그 때 무슨 이름을 댔었는지까진 일일히 다 기억나진 않지만, 최종적으로 결정된 게 건강했으면 하는 의미에서 건이, 행복했으면 하는 의미에서 행이였는데 차라리 그럴 거면 강이, 복이라고 부르는 게 어감이 더 좋지 않겠냐는 내 의견에 따라서 그 날로 아빠 닯아 하얀 털을 가졌고 마치 흰 진돗개 같이 생긴 아이의 이름은 강이가 되었고, 제 엄마를 닮아 연한 갈색빛의 털을 가진 아이의 이름은 복이가 되었다.
이름이 붙을 즈음엔 제법 자라서 꽤 커진 상자안인데도 매일 같이 탈출해서 거실을 돌아다니곤 했고 둘의 외형 차이도 뚜렷하게 드러났기에 우리 가족은 금새 본래 부르던 명칭 대신 강이와 복이라고 부르는데 익숙해졌다.
이름까지 붙고 더욱 자라나선 이젠 탈출하는 게 아니라 집으로 쓰던 커다란 박스를 찢을 지경이 되었을 즈음, 우리 가족은 다시금 아이들을 어디서 키울지로 논쟁을 하게 됐다. 이제 다 컸으니 집 밖으로 내보내도 괜찮다는 의견과 아니다, 하루 이틀 같이 지낸 거도 아니고 아직 어린데 뭘 푹푹 찌는 밖으로 보내냐. 집 안에서 키우자. 라는 의견이 다시금 충돌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집안의 두 기둥의 충돌이었으고 이번엔 아이들도 꽤 커서 이번에야말로 집 밖에서 살게 되겠구나, 라고 여겼지만 그간 봐온 정이 있어서일까. 우리 집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고집을 가졌으며 알레르기까지 주장했던 아버지는 쉽사리 자기 의견을 꺾었고 청소기나 더 자주 돌리고 내 옷엔 털 안 묻게 신경써달라는 의견만 남긴 체 슬리퍼를 신으셨다.
그 결과 강이와 복이는 넓은 거실에서 자유롭게 놀면서 낮에는 전에 만들어둔 개집을 별장 삼는 생활을 하게 됐고.
결과적으로는, 그 덕분에 우리 가족이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