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순이가 죽고 두 마리 다 우리 집에서 키우기로 정한 뒤 한 가지 큰 문제가 발생했다. 이 아이들을 어디서 키우느냐, 라는 문제였다. 만약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큰 상태였다면 개집도 있고 넓은 마당도 있으니 집 밖에서 키워도 괜찮았겠지만 양순이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상태여서 아이들은 아직 어렸고, 때는 여름이었기에 날씨가 꽤 더웠다. 게다가 과거 어린 강아지가 더위를 못 이기고 죽어버렸던 불상사를 겪기도 했고.
그래서일까, 우리 집 식구들 중 강아지를 가장 사랑했던 어머니께서는 이번엔 강아지들을 집 안에서 키워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셨다. 그 말에 어머니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강렬히 반대했다. 아버지는 개털 알레르기가 있다며 반대했고, 남동생은 원래 개를 엄청나게 싫어했으니까. 나의 경우엔 개털이 날려서 집 안을 어지럽히는 게 싫었기에 반대했다. 유일하게 찬성표를 던진 건 한동안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던 여동생이 전부였다. 그러니 다수결의 논리에 의하면 집 밖에서 살게 될 운명에 처한 아이들이었지만, 엄마는 털은 청소를 자주 하면 그만이고 양순이도 죽었는데 다른 아이들도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두고 싶진 않으며 집안일을 가장 많이 하는 건 자기 자신이란 논리로 밀어붙여 결국 아이들은 집 안에서 살게 됐다. 꽤 된 일이라서 기억이 가물가물 하긴 한데, 아마 강이와 복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던 거로 기억한다.
아무튼 두 아이는 그 때부터 집 안에서 함께 살게 됐다. 어머니를 제외한 가족의 구성원들은 그 날 부터 슬리퍼를 신고 집 안을 돌아다녀야 했고 본래 불 들어가는 일 없이 방치되어 있던 청소기는 최소 하루에 한 번은 돌릴 필요가 생겼다. 아직 째깐했던 탓에 박스 안에서만 지내야 했던 아이들인데도 생각보다 털이 꽤 날렸던 탓이다. 그 때는 이름도 따로 안 지어줬다. 부를 정신도 없었고. 우리 가족은 모두가 환자였으니까. 생각해보면 박스에서 나와 대소변 다 가릴 즈음이 되어서야 이름을 지어줬다는 게 참 대단하긴 하다. 그 정도로 엄마 외엔 다들 강아지들에게 관심 가질 겨를 조차 없었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 입맛이 좀 쓰다.
그래서 아이들이 째깐할 때의 기억은 거의 없다. 사내 폭력이란 걸 경험하면서까지 회사에 구질구질하게 붙어 있던 시절이라서 말 그대로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시기였던 탓이다. 그나마 기억 나는 거라면 청소기 돌아가는 소리가 집 안에서 더 자주 들리게 됐다 라는 점과 아이들의 얼굴이 굉장히 귀여웠다 정도.
그리고 내 방에다가 거하게 사고 한 번 쳤다는 정도가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