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두 아이와 만나게 된 계기는 사실 그리 좋은 이유는 아니었다. 울타리가 쳐진 집 바깥에서 살고 있던 양순이라는 아이가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동네 개의 씨를 배게 됐고, 배가 불러오나 싶더니 덜커덕 낳아버린 게 전부였으니까. 본래 양순이가 낳은 건 총 세마리였다. 그 중 한 마리는 이름도 없이 친척집에 넘겨졌고 본래 한 마리만 제외하고 남은 한 마리도 다른 집으로 보내질 예정이었다.
그 이유는 실로 간단했다. 우리 집엔 이미 양순이가 있었고, 강아지까지 합치면 총 2마리라 더 키울 여력이 없었던 탓이다.
매정하다면 매정하고 현실적이라면 현실적인 사유 탓에 원래라면 그렇게 되어야 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동차 무서운 줄 알고 집에서 사랑도 많이 받았던 양순이는 어느 날 홀로 집을 나갔다가 골목길에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 되었고, 또 한 마리의 강아지를 데려가겠단 사람도 딱히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그냥 둘 다 키우는 게 낫겠다는 판단 하에 우리 집은 그렇게 두 마리를 다 키우게 됐다.
그게 바로 강이와 복이였다.
하마터면 영영 못 볼 이산가족이 될 뻔 했으나 우연이 겹쳐 함께 살게 된 아이들이었다. 그 때는 대체 왜 작은 울타리도 넘어다니고 혼자 집 나가도 매번 안전하게 돌아오던 양순이가 왜 죽었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 희생한 게 아닐까 싶다.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해도 눈치까지 없는 건 아니니까. 셋 째가 떠나는 걸 보고 묘하게 달라진 한 마리의 대접까지 보곤 이대로면 생이별을 겪게 될까봐, 행복하게 지냈던 우리 집이 아닌 제대로 밥은 먹고 살 수 있을지 의문일 어딘가로 제 새끼가 끌려가는 걸 원치 않았던 어미의 희생이었다고 생각하면 아다리가 맞으니까.
아다리가 맞는 동시에 씁슬함이 밀려오지만 어쩔 수 있나.
양순이는 이미 죽었는 걸.
양순이가 죽으면서 강이와 복이를 살렸는 걸.
영특하던 양순이니까 이런 미래를 상상하면서 죽었던 게 아닐까.
그러니 난 늘 양순이에게 감사한다.
만약 그 아이가 없었더라면, 강이와 복이는 태어나지도 못 했을 거고.
만약 그 아이가 희생하지 않았더라면, 건강이와 행복이라는 이름은 지어질 일이 없었을 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