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외모가 괜찮았던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스스로도 본인의 외적가치를 부족하지 않다고 여겼던 그 친구에게는 항상 먼저 다가오는 이성이 종종 있었다.
스스로를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던 마음이 과했던 걸까. 그 친구는 호감이 드는 이성친구가 있어도 적극적으로 다가서지 않았다. 적당히 존재감만 드러내도 관심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한 호감 표현을 하면서 다가갈 필요가 없다고 느꼈던 것 같다. 더 좋아한다는 것은 관계에 있어지고 들어가는 것이라 생각했었던 듯싶다.
스무 살이 되면 보통 대학의 캠퍼스 라이프를 꿈꾼다. 특히 갓 스무 살이 되면 한창 연애에 대해 고민이 많아질 시기이다. 20대 시기에 이보다 중요한 고민거리는 없다.
그 친구는 공대에 진학하게 되었고 좋은 비전을 가진 학과에서 공부하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생애 첫 남초사회에 빠지다 보니 만날 수 있는 이성친구가 너무 없었던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은 그 친구에게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이왕이면 예술분야를 전공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미대에 진학한 친구가 맨날 이런저런 술자리에 놀러 다니는 이야기가 들릴 때면 은근히 현타가 온다고 하더라.
그때쯤 그 친구는 깨달았나 보다. 본인이 대단한 연애경험을 가진 것도 아니고 능숙하게 먼저 다가가는 법조차 모르는 아무것도 없는 놈이었다.
보통 이성을 만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주변사람에게 소개받는 것이다. 이 놈은 자존심조차 세서 친구에게 그렇게 조르는 것도 못했다. 인기가 많았던 지난 학창 시절만을 생각했서는 안된다. 스스로의 젊은 청춘을 값지다고 여긴다면 당장 다음 학기에는 옆 학과 교양과목이라도 신청하든 해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조언을 해주고 싶었다.
인기 있던 학창 시절이 그 친구에게는 흐뭇한 추억이었겠지만, 과한 자존감을 가지게 되어 독이 되었다. 먼저 다가가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더 서툴게 만들었던 거었다. 능동적인 태도보다 수동적인 태도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능동적으로 본인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자존심을 내려놓고 부탁할 용기도 낼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진짜 자존감 높은 사람이 되는 길이다. 과도한 자존심보다는 서툴더라도 순수한 용기를 내는 사람이 내적으로 더 성숙하고 매력적인 사람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