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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소민 Dec 02. 2024

염매: 고통의 연결고리

공포소설 - 8화

회사를 떠난 이후, 나는 복수를 계획하며 세심하게 준비했다. 상사가 내던진 끔찍한 말들, 고양이를 향한 조롱 섞인 농담들이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히 맴돌았다. 그 말들은 단순한 상처를 넘어, 마치 내 영혼을 갉아먹는 저주처럼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도 그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나는 깨달았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 상식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복수를 위한 방법을 찾던 중, 나는 소문난 무당에 대해 들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영혼을 다룰 줄 아는 강력한 존재로 알려져 있었다.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나의 고통을 고스란히 돌려줄 방법이 필요했다. 나는 그녀를 만나러 가기로 결심했다.

무당과 처음 마주했을 때,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서늘했다. 마치 오래된 시체를 들여다보는 듯한 차가움과 무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마치 피에 젖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기괴했다. 내가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는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복수를 원하나 보군. 네가 찾는 게 뭔지 알고 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마음은 이미 복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들에게 걸 저주는 이미 준비됐나?”

그녀의 말은 마치 내 분노를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했다. 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의 미소는 더욱 깊어졌다. 그 미소는 단순한 웃음이 아니라, 사냥감의 마지막 숨소리를 즐기는 포식자의 표정이었다.

“고양이가 네게 그런 이유가 있겠지.”

그녀는 나지막이 말했다.

고양이는 네 분노의 집합체야. 그 영혼이 너를 배신한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네가 그 고양이를 그렇게 만든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마치 쇳덩이가 끌리는 소리처럼 공기를 가로질렀다. 나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고양이가 나를 적대하는 게 나 때문이었다는 건가? 그녀의 말은 내 안에 새로운 불안을 일으켰다. 하지만 상사의 비웃음, 동료들의 경멸, 꿈속의 고양이의 처참한 모습이 떠오르며, 나는 복수에 대한 의지를 다잡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이 고양이가 나를 이렇게 적대하는 걸 견딜 수 없어요.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도 복수하고 싶어요.”

무당은 조용히 웃었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얼음 위를 걷는 발소리처럼 서늘하게 방 안을 휘감았다.


“네 고양이의 영혼을 이용하면 된다. 그 고양이는 단순히 동물이 아니야. 너의 분노와 고통이 그 안에 스며들어 있어. 그 영혼을 사용해, 그들에게 네 고통을 고스란히 돌려줄 수 있어.”


나는 고양이의 영혼을 도구로 삼겠다는 말을 들으며 잠시 숨을 삼켰다. 사랑했던 존재가 복수의 도구가 된다니... 그 잔혹함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하지만 상사의 비웃음과 고양이의 하악질이 교차하며, 내 결심은 점점 굳어져 갔다.


상사의 목소리가 다시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고양이 냄새가 난다'던 그 조롱은, 내 존재를 부정하는 것 같았다. 동료들의 비웃음 속에서 나를 향한 차가운 시선들... 모든 것이 나를 이 끔찍한 선택으로 몰아넣었다.


“이 의식을 ‘염매’라고 부른다.”

그녀는 낮게 말했다.

“죽은 영혼을 저주의 도구로 사용하는 강력한 의식이다. 네가 사랑했던 고양이의 영혼을 사용해야만, 이 저주는 완성될 것이다.”


그녀는 의식에 필요한 도구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각 도구는 묘한 냄새를 풍기며, 방 안에 어둡고 차가운 기운을 퍼뜨렸다. 그녀가 꺼낸 통에는 검은 잉크 같은 액체가 가득 차 있었고, 액체 속에서는 작고 날카로운 물체들이 떠올랐다. 그것들은 뼛조각처럼 보였다. 촛불은 바람도 없이 흔들리며 희미하게 깜빡였다. 공기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염매’라는 단어가 그녀의 입에서 나올 때마다, 방 안의 온도가 점점 더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준비한 통을 들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통 안에서 묘한 기운이 솟아오르며, 차갑고도 끈적한 무언가가 내 손끝으로 전해졌다. 그것은 생명도, 죽음도 아닌, 설명할 수 없는 무형의 압박감이었다. 무당의 시선은 통 속에 고정되어 있었고, 그녀의 입술은 천천히 움직이며 알 수 없는 주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촛불이 갑자기 일렁이며 방 안이 순식간에 어둠으로 잠겼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퍼져 나갔고, 그 소리는 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그 순간, 방 안의 온도는 얼음처럼 차가워졌고, 내 입김이 하얗게 피어올랐다.


“의식은 이제 막 시작될 뿐이다.”

그녀가 속삭였다.

“이 통 안에 담긴 것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다. 이것은 너와 그들에게 영원히 남을 상처다.”


그녀의 손이 통 위를 스쳤고, 그 순간 통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그것은 따뜻한 빛이 아니라, 마치 오래된 사체에서 흘러나오는 부패한 기운처럼 느껴졌다. 그 빛은 내 손을 타고 올라와, 심장을 조여 오는 듯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숨이 막혔고, 손끝에서 통이 떨어질 뻔했다.


“네가 원하는 복수는 이제 되돌릴 수 없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결심했는가?”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결심했습니다.”


그녀는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좋다. 이제 시작하자.”


그 말과 함께 그녀는 한 손으로 통을 가리켰고, 다른 손은 공중에서 무언가를 끌어당기듯 움직였다. 바닥이 진동하기 시작했고, 어디선가 고양이의 낮고 깊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단순한 동물의 울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저주에 갇힌 영혼의 비명이었다.


나는 두 손으로 통을 움켜쥐었다. 통 안에서 피어오르는 냄새는 숨 막힐 듯 독했다. 마치 고양이의 털과 살이 썩어가는 냄새가 한데 섞인 듯한 역겨움이었다. 그 냄새는 나의 기억 속 고양이의 하얀 털과 투명한 눈빛을 잔인하게 짓밟으며 떠올랐다.


“의식은 곧 시작될 것이다.

그녀가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그전에, 너는 이 복수가 너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할지 깨닫게 될 거야.”


그녀의 말이 끝나자, 촛불이 꺼지며 방 안이 완전한 어둠에 휩싸였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나는 고양이의 비명 같은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멀리서 울리는 듯했지만, 동시에 내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몸이 얼어붙은 채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의식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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