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말하지 말고 살아라 – 조용한 싸움의 시작

그들은 날 지우려 했고, 나는 조용히 싸우기로 했다

by 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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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날 지우려 했고, 나는 조용히 싸우기로 했다

말하지 말고 살아라 – 조용한 싸움의 시작

메리는 차근차근 돈을 모으고 있었다.

회사의 온갖 부조리에도 참고 견디며, 마음속에 단 하나의 목표를 품었다. 결혼. 그리고 그 이후에도 회사를 계속 다니며 스스로의 삶을 이어가는 것.

그 꿈 하나로 버티고 있었다.

힘들고 억울한 순간마다 속으로 되뇌었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니까, 안 자르는 거겠지."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서, 필요한 사람이니까."


그런데.

하루는 부장이 전 직원이 다 있는 자리에서 큰소리로 말했다.

"메리, 너 결혼하면 그만둘 거잖아? 더 다니겠어?"

순간 회의실이 얼어붙었다.

메리는 멍했다. 이게 무슨 말이지? 왜, 왜 저 말을 사람들 앞에서 하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심장이 쿵, 내려앉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메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말하고 싶었다.


"저, 결혼해도 계속 다닐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 말이 너무 늦었다.

이미 부장의 말은 회의실 전체 공기처럼 번져 있었다.

‘결혼하면 여자 직원은 그만두는 거.’ ‘여자는 어차피 오래 못 다니는 존재.’

그 오랜 편견을 부장은 아무렇지 않게 던졌다. 그것도, 자신보다 열 배는 더 일 잘하는 부하직원에게.

메리는 속으로 분노를 삼켰다.

‘저 사람, 지 딸이 이런 말 들으면 뭐라고 할까.’ ‘저 사람, 어떤 마음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자기 딸은 절대 이런 취급 안 받을 거라고 믿는 걸까.’

자기도 딸 있는 사람이면서. 자기 자식도 여자면서. 뻔뻔하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다니. 제정신인가.

무슨 죄를 지으려는 걸까. 제발, 니 딸도 너 같은 상사 만나서 똑같이 당해봐라. 메리는 마음속으로 이를 악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너졌다.

그날 오후, 메리는 잠시 자리를 비우고 회사 화장실 한 칸에 혼자 앉았다.

손을 꼭 잡고, 눈을 감고, 속으로 울었다.

소리 내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은 울고 있었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지만, 가슴속이 짓눌렸다. 감정을 꾹꾹 눌러 삼켰다.

창피해서가 아니었다. 서러워서도 아니었다. 단지, 너무 억울했다.


‘나는 계속 다닐 마음이었는데. 난 이 회사에서 더 성장하고 싶었는데.’ ‘나는 여기서 내 존재를 더 증명하고 싶었는데.’

그저 ‘여자’라는 이유 하나로, 가능성과 의지를 짓밟힌 기분이었다.

더 서운한 건, 그 어떤 축하의 말도 없었다는 것이다.

결혼한다고 밝혔을 때, 축하해주는 말 한마디조차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가 잘해도, 못해도 눈에 가시구나.’

‘그냥, 지 힘으로는 자르기 어려우니까 어쩔 수 없이 두고 있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더 서글펐다.

그런데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누구도, 그 자리에서 부장의 말을 반박하지 않았다.


민수는 옆자리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고, 다른 후배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회의록을 메모했다.

아무도, 메리의 존재를 방어해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충격이었던 건, 그 장면을 마주한 나 자신이었다. 그런 말을 들어도 웃어야 하는 나, 멍하니 앉아 아무 말도 못하는 나.

‘왜 나는 이 상황에서 할 말을 하지 못할까.’

그날 이후, 메리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누구도 날 지켜주지 않으면 내가 나를 지키자.'


보고서에 자신의 이름을 정확히 적고, 제안 메일엔 부장이 아닌 전원 참조를 걸었다.

점심시간은 정확히 1시간. 커피도 여유 있게.

눈치가 아니라, 규정과 자신감으로 움직였다.

작은 저항이 쌓여, 메리의 하루가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메리를 투명인간처럼 대했다. 하지만 메리는 이제 스스로를 지우지 않았다.

자신을 무시하는 말에 입을 다물지 않았다.

그리고 기록했다. 누가 무슨 말을 했고, 어떤 자리에서 자신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기억이 아닌 증거로.

그것이 메리의 방식이었다.


말하지 말고, 웃으며 참고, 눈치껏 살아야 한다는 사회의 강요 앞에서 메리는 이제 작게 말하기 시작했다.

작고 조용하게. 하지만 분명하게.

이건 싸움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혼자서 벌이는 싸움. 그렇지만, 메리는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지금 아니면, 끝까지 말 못 하고 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메리는 다시 생각했다.

‘저 사람도 딸이 있다. 그 딸은 과연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랄까?’

‘자기 딸은 무사할 거라고 믿는 걸까?’

‘자기 손으로 누군가를 이렇게 밟아놓고, 죄책감 없이 잠이 오긴 할까?’


메리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해봤자 바뀌지 않을 것 같아서가 아니었다.

지금 이 말이, 더 큰 불이익으로 돌아올 걸 알기 때문이었다.

이 회사에 남아 있으려면, 이 악물고 참고, 기록하고, 조금씩 조용히 흔들어야 했다.

지금은, 싸움의 시작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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