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공든 탑도, 누군가의 입 하나에 무너진다

보이지 않는 손, 들리지 않는 함성

by 메리



민수는 달랐다. 당당했다. 아니, 기고만장했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실수는 메리나 다른 직원이 하면 "왜 그랬냐"는 핀잔이 따라왔지만,
민수가 하면 "이건 경험이 부족해서 그래. 앞으로 잘하면 되지"로 끝났다.


민수는 뭔가를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그도 알았을 것이다. 본인이 어떤 보호막 안에 있다는 것을.


회의 자료를 정리하던 어느 날, 외부 클라이언트와의 중요한 미팅이 잡혔다.
민수가 자신이 준비하겠다고 나섰다.
부장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래, 민수 너 한번 해봐"라며 맡겼다.


메리는 걱정이 됐지만 나서지 않았다. 그러나 예상대로였다.
미팅 당일, 민수는 자료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고, 고객은 회의 중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결국, 부장이 뒤늦게 상황을 수습했고, 클라이언트는 회의 후 불쾌하다는 반응을 전해왔다.


그런데도 돌아온 말은 이랬다.
"민수한테 너무 기대하지 마. 아직 배울 나이잖아. 실수하면서 배우는 거지."


심지어 메리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왜 그때 좀 도와주지 않았어? 팀워크가 중요한 거 알잖아."

잘못은 민수였지만, 화살은 메리에게로 향했다.
억울했다. 그때부터 메리는 자신의 일 외에 어떤 것도 책임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며칠 후엔 외부 손님을 접대하는 자리가 있었다.
원래는 메리가 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부장이 민수를 내보냈다.


“요즘 민수도 경험 쌓아야지.”

메리는 조용히 빠졌다. 그리고 다음 날 사무실에는 민수의 미소가 떠다녔다.
“어제 본부장님이랑 손님이 내 응대에 감탄하셨다더라. 역시 난 이런 자리가 맞는 것 같아.”


그 손님은 몇 년 전 메리의 응대로 회사와 장기 계약을 맺은 업체였다.
그날 밤, 메리는 홀로 과거 미팅 자료를 다시 꺼내 정리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사람들이 기억 못 해도, 나는 내가 뭘 했는지 안다.”


아이디어 회의도 그랬다.
팀 내 브레인스토밍 회의에서 메리가 조심스럽게 제안한 아이디어가 있었다.
반응은 미지근했다.

그런데 몇 주 후, 민수가 그 아이디어를 약간 바꿔 자기 입으로 설명했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부장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이거야! 이게 우리가 찾던 방향이지. 민수, 이번엔 제대로 한 건 했네."

메리는 손을 꽉 쥐었다. 그 아이디어는 자기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증명해주지 않았다.

야근 문제도 여전했다.
금요일 저녁, 민수가 흘리듯 말했다.
"오늘 야근 좀 할게요. 자료 마무리해야 해서요."

메리는 알고 있었다. 그는 퇴근 후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
그가 사라진 사무실에서 조용히 야근을 이어간 건 메리였다.

그러나 월요일, 야근 수당과 택시비 청구서엔 민수의 이름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퇴근도 안 한 사람처럼 처리된 청구는 멀쩡히 통과되었다.
메리는 입을 다물었다.
말해봤자 돌아오는 건 민수에 대한 변명이었다.

그 모든 상황 속에서도 본부장은 민수를 보호했다.
메리가 실망하거나 분노하면, 마치 눈치를 본 듯 웃으며 말했다.
“메리, 요즘 많이 예민한 거 아니야? 민수도 잘하려고 애쓰는 거잖아.”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그런 과잉 친절이었다.
민수가 실수한 날엔 오히려 본부장이 메리에게 살갑게 굴었다.
커피를 사주고,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것은 미안함이 아니라, 방해하지 말라는 신호 같았다.


어느 날엔 이런 말도 들었다.
“민수한테 왜 일을 안 줘? 그 친구 일 안 하게 하려고 그러는 거야?
요즘 네가 민수 밀어내려고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더라.”

밀어내다니. 메리는 속으로 울컥했다.
일을 빼앗긴 건 자신이었다. 프로젝트에서, 보고에서, 발표에서 하나씩 민수에게 넘어갔다.
그런데도 '민수가 메리에게 피해를 입고 있다'는 식의 말이라니.


심지어 지난주 보고서도 그랬다.
자신이 주도하고 정리한 자료였다. 발표도 메리가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점심시간 직후, 부장이 말했다.
“그거, 민수가 하기로 했대. 본부장이 지시하셨어.”


말이 안 됐다.
그래도, 메리는 아무 말 없이 민수에게 자료를 넘겼다.
정리한 파일을 설명하면서 웃으려 애썼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그날 저녁, 복도에서 민수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야, 이거 내가 정리한 건데 본부장이 완전 칭찬했어. 나도 이제 좀 인정받는 거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 보고서를 누가 만들었는지, 누가 밤늦게까지 손을 본 건지.

메리는 창밖을 바라봤다.
붉은 노을이 도시를 덮고 있었다.
공든 탑이 무너지는 소리가 마음속에서 났다.
그 탑은 삽으로 허물어진 게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의 입 하나로.
말도 안 되는 말 한마디로. 존재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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