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새벽

새마을 운동 풀 뽑기 운동

by 담월

유년의 새벽


오순찬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는 산골 오지였다.

산비탈 이곳저곳에 흩어져 살던 집들이 새마을운동 덕에 하나 둘 모여들었다. 산 밑으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이면서 처음으로 ‘마을’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스레트 지붕에선 장맛비를 기다리는 연기가 올라오고 담장 대신 심은 박넝쿨이 대문 옆을 휘감아 돌았다.


여름이면 마을은 유난히 깨끗했다.

그건 매주 돌아오는 ‘풀 뽑기’ 덕분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마을 전체가 새벽부터 풀 뽑기에 나섰다. 집집마다 돌아가며 한 사람씩은 꼭 나가야 했고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덕분에 형제들이 많아 차례로 돌아가며 풀 뽑기에 나갔다. 언니가 나간 주 다음엔 내가 나가고 그 다음 주는 동생 차례가 된다.


마을 스피커에서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노래가 흘러나오면 이불 속에서도 잠결에 한숨부터 나왔다. 그래도 엄마가 “오늘풀 뽑으러 갈 차례야!” 하면 할 수 없이 일어나 하품을 하며 호미를 들었다. 눈꼽도 떼지 않은 채 부스스하게 나선 새벽길, 억지로 일어난 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엄마의 눈치에 못 이겨 슬리퍼를 질질 끌고 골목으로 나섰다.


그것도 잠시,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드는 걸 보면 금세 기운이 났다. 졸음도 귀찮음도 친구 얼굴만 보면 모두 사라졌다.

풀을 뽑는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반쯤은 노는 시간이었다. 몰래 뽑은 풀을 친구 등에 얹어 장난을 치는 친구, 풀 대신 꽃을 뽑는 친구, 노래 부르는 친구도 있었다. 줄 맞춰 잡초를 뽑다가 개구리 한 마리라도 발견하면 다들 우르르 몰려갔다.


어느 날, 손에 호미를 들고 풀을 걷어내다가 지렁이가 나왔다. “꺄악!”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소리를 질렀다. 흙 위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는 어린 내 눈엔 뱀처럼 무섭게 느껴졌다. 깜짝 놀라 손을 털며 뒤로 물러서고 그 모습에 친구들이 까르르 웃곤 했다. 겁 많은 친구는 지렁이 한 마리에 눈물까지 찔끔 흘리기도 했다.


누가 더 많이 뽑았는지 은근히 경쟁도 하며 골목에는 까르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해가 머리 위로 슬금슬금 올라올 무렵, 손끝과 발목엔 진흙과 땀이 묻어 있었지만 마음은 개운했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나면 부엌에서는 엄마가 된장찌개를 끓이고 계셨다. 호박잎이 반찬으로 올라오고 갓 지은 밥에 김치 하나만 얹어도 정말 꿀맛이었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와 흙냄새, 마당 우물에서 들려오던 아버지의 두레박으로 물 퍼올리는 소리, 밥솥 뚜껑 열릴 때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김, 그리고 친구들과 깔깔대던 웃음소리까지, 모든 것이 선명하게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렇게 마을은 여름마다 더 깨끗해졌고, 우리는 그만큼 더 가까워졌다. 새벽 공기 속에 뿌옇게 퍼지던 이슬 냄새, 흙냄새, 땀냄새까지도 그립고 정겨운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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