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by 이영호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이런저런 모임 장소에서 자주 듣는다. 예전 한 기업 광고의 카피로 널리 알려진 이 말은 나이와 상관없이 젊고 밝게 자기의 인생을 과감히 개척해 나가는 사람들에게 꼭 들어맞는 표현이다.

나처럼 나이가 지긋이 든 모임 회원들은 이 말을 입에 올리며, 나이에 괘념치 말고, 더욱 젊게, 보다 활력 있게 살자고 스스로 다짐하고 또 남들에게 권유한다.

반면 어떤 이들은 ‘내 나이를 잊은 지 오래됐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대게 칠순에 가까운 연세든 이들이다. 더러 중년층의 사람들도 곧잘 이런 말들을 쉽게 내뱉는다.

세상살이에 정신없이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를 빗대거나, 한해를 거듭할수록 나이는 많아지고, 늙고 병들어 힘이 빠지는 자기 모습을 비관해서 하는 말일 게다. 그러나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의 이름과 나이를 잊어버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또렷이 자신의 세월과 이력을 기억하며, 앞으로의 삶을 계획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2007년 2월 정년퇴직 후의 시간을 되돌아보니 ‘세월이 유수’란 말이 심각할 정도로 정말 시간이 빠르게 지나왔다. 처음에는 제2 인생의 시간표를 알차게 짜서 보람된 하루하루를 보내겠다고 다짐했다.

이리저리 다니면서 ‘백수가 과로사한다’라고 우스갯말을 해가면서 부지런히 움직이었다. 때때로 친구들을 만나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시며 우정도 쌓고, 동영상 촬영을 취미생활로 삼아 꾸준히 기초교육도 받았다.

그리고 틈틈이 등산, 여행 등을 하며 바쁘게 시간을 보내왔다. 그런지 벌써 2년이 되었다. 35년이란 세월 동안 교직에 몸담으며, 현업에만 충실해 외부 활동이나 취미생활은 거의 잊고 살아왔던 게 아마 억울했었나 보다.

그렇게 2년 동안 부지런히 밖을 쏘다니다 보니 이제 그 원이 풀렸는지 지금은 처음보다 행동반경이 많이 좁아졌다. 부지런히 참석하던 모임의 숫자도 줄어들고, 하루를 집 밖에서보다는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이제 집안에서의 소소한 행복들을 하나씩 깨쳐가고 있다.

집안에서 아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나의 집안일도 새로이 늘어났다. 우선 집 안 청소는 내가 주로 맡아 하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 삼아 밀대로 걸레질하고, 쓰레기 버리기 등을 하고 나면 1시간 정도 지난다. 청소하다 보면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니 땀이 나고 운동이 된다.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운동 삼아 청소하니 집안도 깨끗하고 기분도 상쾌하다.

아내에게 허락받아 안방을 내 서재로 꾸며 집안 생활의 재미를 더 키웠다. 평소 내 서재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그 소원이 이뤄진 것이다. 서재 방이 생기니 혼자만의 즐기는 시간이 많아졌다. 책상에 홀로 앉아 책을 보고, 또 컴퓨터를 통해 동영상 촬영분을 편집하고, 때때로 인터넷 바둑, 게임도 즐기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요사이는 아내와 함께 집안 살림을 정리하는 일에 재미가 붙었다.

딸은 시집갔고, 아들은 그동안 방구석에 들어앉아 있어 보기가 싫었는데, 취직되어 요사이는 새벽에 출근해 늦게 들어오니 얼굴 보기가 힘들 정도다.

집에는 아내 와 나 둘뿐이다. 아내와 상의해 필요 없는 물건은 과감하게 정리하기로 하고 사용하지 않는 그릇에서부터 잘 안 입는 옷가지와 책등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버리거나 나누어 주었다. 그렇게 하고 나니 방이 더 넓어 보인다고, 집에 오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한다.

또 아내와 상의해서 계획표를 짰다. 매일 저녁밥 먹고,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에 다섯 바퀴 돌기, 재래시장 돌아오기(1시간 정도 걸린다), 2주에 한 번씩 영화 보러 가기. 2주에 한 번씩 찜질방 가기, 한 달에 한 번씩 교보문고에 들렀다가 청계천 걷고, 저녁밥 사 먹고 들어오기 등등.

나는 지금의 생활에 매우 만족함을 느낀다. 은퇴한 노부부에게 이런 행복이 가능한 것은 사실 연금이 큰 몫을 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있는 걱정과 고민이 우리 부부에게 왜 없지 않겠나 마는, 그래도 연금은 정말 우리 부부에게는 너무나 든든한 버팀 몫이다.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때와 사람, 그리고 일은 무엇이냐 라는 물음에 톨스토이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현재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당신 앞에 있는 사람과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평범한 소시민으로 이웃과 정 나누며 나이와는 상관없이 부지런하게 내 삶을 일궈가며 살다가 하늘에서 부르면, 웃으면서 가야지 하고 오늘도 다짐해 본다. (사학 연금지; 2009년 8월, 통권 273호 게재)

작가의 이전글정년(停年)은 제2의 인생 출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