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ㅈㅑㅇ Oct 02. 2024

날씨 이야기

생각보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날이 갑자기 쌀쌀해졌다.


엊그제만 해도 너무 덥다고, 사무실에서 낮에 에어컨을 켰는데. 오늘은 책상 아래 온열기구를 켰다. 컨테이너 사무실이라 바깥의 온도변화에 더 개방적이다. 다리가 추웠다. 협착증이 있는 사장님은 발이 시리다고 하셨다. 비염인 친구들은 오늘을 기점으로 일제히 콧물이 난다고 톡방에서 한 마디씩 했다. 이렇게 극적일 수가. <이방인>의 뫼르소가 태양 때문에 방아쇠를 당기게 되는 게 이해가 될 정도의 더위에서 곧바로 추위로 넘어가나 보다. 벌써 추위가 걱정이다.


뿐만 아니라 요즘 하던 고무캡 끼우기가 달라졌다. 특정 바이어의 주문에 따라, 투명 아크릴 튜브 약 3000개에 주사위만한 고무뚜껑을 끼우고 라벨을 붙이는 일을 하고 있다. 이게 생산현장에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라, 사무실 사람들이 짬짬이 하고 있는데. 오늘 라벨이 잘 안 붙는다. 고무캡이 안 들어간다. 하루하루 기온이 떨어질수록 스티커 라벨의 접착력과 고무의 탄성이 확확 달라진다. 스티커와 고무, 너희들도 날씨를 느끼는구나.


10대 때에는 날씨 얘기로 대화를 트는 것이 너무 가식적으로 느껴졌었다. 그냥 본론으로 들어가지, 웬 꾸밈이 이렇게 많아 싶었더랬다. 곁다리 말고 중요한 이야기로 바로 연결되고 싶었더랬다. 그래서 하려는 말이 뭔데? 애송이 시절의 부끄러운 이야기다. 나이가 들면서 날씨 스몰톡이 자연스러워졌다. 그런데 이제 보니. 세상에 날씨만큼이나 중요하고 근본적인 것도 없다.


우리 기분은 얼마나 크게 날씨에 좌우되는지. 맑고 높은 하늘에 양털구름 떠 있는 날에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비가 며칠 동안 연이어 내리면 기분이 가라앉을 뿐 아니라 관절도 반응한다. 눈이 오면 미끄러질까 걱정이다. 운전도 어려워지지만, 만에 하나 미끄러져 다리뼈나 골반 뼈가 부러지기라도 한다면 인간존엄성은 접어두어야 하지 않던가.


소설 <삼체>에서는 태양이 3개인 행성에서 예측불가능한 날씨 때문에 외계인들이 지구를 장악하기 위해 떠나면서 온갖 사달이 일어난다. 지구는 멸망 직전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새삼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태양에 감사한다. 빙하기도 결국 날씨였고, 공룡이 멸망했던 이유도 어찌보면 날씨 때문. 날씨는 정말 근본적인 문제이자 답이자 현상이자 원인이다.


방금 농구 선생님 전화를 받았다. 아이가 아직 안 왔다는 것이다. 오늘 숙제 안 하고 만화책 보고 핸드폰 보면서 노는 아들을 뒤로하고, 저녁밥은 준비되어 있으니 알아서 숙제할 것 하고 밥 잘 먹고 시간 맞춰 나가렴 하고 나왔더랬다. 집에 있다 보면 자꾸 열받고 잔소리하게 될 것 같아, 웃으며 단호하게 나왔건만. 그렇게 글쓰기 타임을 갖고 있었건만. 역시나 아이는 늦었나 보다. 농구 다녀오면 보나 마나 못한 숙제 또 못하고 잠들겠지…


나의 마음이 식어가는 날씨처럼 차가워지는 기분이다. 더운 곳으로 여행을 가면 좀 달라질까.


겨울이 다가온다. 휴...


Unsplash - NASA


작가의 이전글 안 깨울 결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