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정쩡한 딸들의 일본 나고야 여행 1일 차
부담스러웠습니다.
지난 1월 일본 나고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팀은 저와 친정엄마, 딸. 그러니까 외할머니, 엄마, 딸 이렇게 3대에 걸친 딸들이었지요. (헷갈리니까 친정엄마는 할머니, 저는 엄마, 딸은 딸로 지칭하기로 합니다.)
연말 유효기간 임박한 항공 마일리지를 처분하는 과정에서, 일정 조율에 지친 할머니가 '그냥 되는 사람만 가까운 데로'를 외치며 급조된 여행이었지요. 마일리지의 대부분이 할머니 것이었습니다.
무엇이 부담스러웠느냐? 일행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천성이 그다지 다정하지 않거니와, 워킹맘이었던 할머니와 현업 워킹맘인 엄마 사이는 서로 적당한 거리를 지켜왔습니다. 그렇다고 반목하지는 않아요. 그냥 대화가 좀 건조하고, 스킨십은 해괴망측하죠. 이런 사이에 3박 4일 딱 붙어 다니는 여행이라니요. 한 방에서 지내야 한다니요.
그러나 항공권은 예매되었고, 취소의 불이익이 크며, 방이 얼마 남지 않은 숙소는 서둘러 예약을 마쳤습니다. 이미 활은 시위를 떠났고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패키지여행만 다녔던 할머니는 불안했을 겁니다. 항공권, 숙소, 일정을 여행사 대신 엄마가 맡았으니까요. 엄마는 엄마대로 여행 중 속 깊은 대화를 해야 할까 봐 부담. 또 헐렁하게 짠 일정이 모두에게 만족스러울지 알 수 없어 부담. 딸은 그저 다이소, 세리아, 돈키호테에 가서 쇼핑할 생각에 들뜸.
불안, 부담, 들뜸이 함께하던 지난 1월의 어느 추운 목요일 새벽, 3박 4일의 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
나고야. 비행기로 1시간 반 걸렸어요. 일본의 한가운데 있어서 중부국제공항이라 이름 지어졌다네요. 오사카 교토 관서지역과 도쿄로 대표되는 관동지역 사이에 위치한 곳. 도착 후 내국인 아닌, 외국인 전용 출입국 부스를 지나니 해외여행이 실감됩니다. 조금 남쪽으로 왔을 뿐인데, 다릅니다.
우선 숙소에 짐을 내려야 합니다. 숙소 앞까지 가는 버스를 찾았습니다. 나고야 도심 사카에 지역까지 가는 좌석 버스를 탔지요. 버스기사님이 차의 왼쪽 아니고 오른쪽에 앉아 계세요. 설명을 자세히 해주시는데 일본어. 요금은 탈 때 아니고 내릴 때 낸대요. 카드보다 현금 내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요.
길 옆으로 바다가 보이고, 미세먼지 없는 파란 하늘이 보입니다. 창 밖 자동차들도 묘하게 다릅니다. 폭이 좁달까요. 레이나 모닝 친구들 같아요. 우리나라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고층 아파트나 빌라 대신,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보는 목조주택이 눈에 띕니다. 도심에 들어서니 키가 작고 창도 작은 아파트들도 보입니다. 에어컨 실외기를 베란다 아래쪽이 아닌 위쪽에 배치했네요. 촘촘하게 걸어둔 빨래들마저 어쩐지 단아하고 이색적입니다.
그렇게 멀리 오지 않았는데 느낌 참 달라요.
숙소는 나고야의 번화한 도심 사카에 근방입니다. 짐을 맡기고 나니 점심. 호텔이 표시된 지도 한 장을 챙겨 오스 상점가 쪽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칠순이 넘은 할머니가 걷는 것이 걱정됐지만, 평소 운동 열심히 해서 괜찮다 하셨어요.
점심 먹을 장소를 정해둔 건 아니었어요. 여행에는 모름지기 우연의 영역이 필요하다 생각하는 한 사람으로서, 미리 좌표 찍어둔 맛집 같은 건 없었습니다. 좀 헤맸습니다. 따끈한 국물이 생각났고, 기왕이면 일식으로 먹고 싶어서 좀 돌아다녔지요.
그렇게 우연히 마주친 우동집은 정말 맛있었어요. 국물의 깊이가 제가 애정하는 동네 일식집 국물과 비슷하거나 더 진했습니다. 씨간장을 같은 걸 쓰나 싶었네요. 가게 이름은 DEN. 카페테리아처럼 원하는 음식을 쟁반에 담아 가며 주문하는 캐주얼한 곳이었고, 튀김이 기가 막히게 맛있었습니다. 단무지나 김치는 없었지만, 다진 생강을 제공해 줘서 국물에 타 먹었습니다. 커다란 유부초밥이 있어서 밥도 먹었지요. 게다가 가격도 무난. 현금만 되는 곳이었지만 또 가고 싶단 생각이 들 만큼 좋았어요.
배 두들기며 좀 더 남쪽으로 가니 나고야 과학관. 견학 온 아이들이 왁자지껄해요. 딸은 초등생 티가 난다며 혀를 찹니다. 딸도 초등생입니다. 엄마와 할머니는 딸을 보며 웃어요.
공중전화 부스도 발견, 딸은 영국 드라마 닥터후를 봤기에 달려갑니다. 전화는 초록색이었습니다. 공중전화가 무엇에 쓰는 것인지는 설명해줘야 했습니다. 동전을 넣어 전화기가 작동되는 모습, 여러 사람이 돌아가면서 함께 쓰는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나 봐요. 새삼 세대 차이를 느낍니다.
드디어 오스 상점가 인근. 붉은 기둥과 널찍한 거리, 투명 지붕이 몇 블록에 걸쳐진 상점 거리입니다. 첫인상은 엄청 번화했다기보다 좀 오래되고 닳은 관광지 느낌이에요, 저의 개인적 느낌입니다. 상점가 안에 당산나무 같은 큰 나무와 우물이 함께 있는 작은 언덕도 있고, 아기자기 해보이는 신사도 있습니다. 오스칸논이라는 큰 사찰을 차치하더라도, 대규모 상점가 안에 이런 장소들이 함께 현재를 살고 있다는 게 신기합니다.
아까 우동집에서 현금만 받는다 할 때도, 공중전화를 볼 때도, 상점가 안에 신사와 금줄 쳐진 우물을 보면서도 그랬어요, 어쩐지 이 여행지가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합니다.
오스에는 오타쿠 문화의 정점(?)인 중고 만화서점 겸 굿즈 판매점인 '만다라케'도 있고, 골동품 시장도 열립니다. 황학동과 책대여점과 만화방이 명동과 합쳐진 장소 같아요.
한국보다 먼저 서양문물을 받아들이고 발전하던, 기억 속 전자제품의 나라 일본에서 아날로그 흔적을 찾게 될 줄이야.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오스 상점가에 온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딸이 고대하는 세리아에 가기 위함입니다. 세리아는 100 ~ 300엔짜리 물건이 즐비한 가게. 연예인 포토카드를 포장하고 담는 다양한 플라스틱 용기와 필름지가 세리아에 많대요. 친구들 사이에서 일본 여행 시 꼭 방문해야 할 장소로 소문났다고 합니다. 아이는 세리아에서 대 만족. 할머니와 엄마는 세리아보다 다이소에서 더 만족.
오스 상점가로 온 이유 두 번째 이유는 지브리 테마카페입니다. 카페 이름은 오스모노리 카페 코다마. 제가 꼭 가보고 싶었기에, 이번 유람에서 유일하게 예약해 둔 식당 겸 카페였습니다. 가파른 계단을 3층이나 올라가야 했지만. 나고야에 오면서 지브리 파크를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충분히 달래준 곳입니다. 지브리 파크를 이 어정쩡한 일행과 걸으면서 인당 20만 원 넘는 입장료를 내는 것보다는 훨씬 만족스러울 것 같았어요.
역시나 좋았습니다. 공간이 이야기로 꽉 차 있어요. 지브리 만화 거의 모든 작품의 놀랍고 귀여운 굿즈가 구석구석 전시되어 있고, 모든 메뉴가 만화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저희가 주문한 메뉴는 하쿠강 음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포뇨 라면 (벼랑 위의 포뇨), 캐스퍼 베이컨 계란 볶음밥 (하울의 움직이는 성), 그리고 우롱차와 오렌지 주스. 인스타그램으로 예약했고, 메뉴는 다 예쁘고 맛있었어요. 이른 저녁 해결했습니다. 할머니는 단무지, 김치, 피클 같은 반찬이 없는 게 심히 아쉬웠습니다. 저도 약간. 입맛은 조금 닮았는지도 모르겠네요.
이렇게 첫날의 일정을 대충 마무리하려 합니다.
숙소로는 걸어서 돌아가기로 해요. 지친 일행으로부터 원망의 눈빛을 읽은 듯 하지만, 못 본 척합니다. 몇 블록 안 되는 데다 버스나 지하철 타는 게 더 어려워요. 일단 북쪽으로 걷습니다.
해가 지고 퇴근 시간이 됐나 봅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사무직 20~30대들이 조근조근 이야기하는 퇴근길을 잠깐 공유합니다. 스타일은 좀 다르지만 까만 머리 까만 눈, 별로 다르지 않더라고요. 미국 플로리다의 한 중소도시에서 느꼈던 이질감이 여기선 안 느껴져요. 사람들 속에 스며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적당히 멀고 적당히 다른 도시라 여행하기 편안하구나 싶었지요.
생각은 또 금방 뒤집힙니다. 어느 높고 화려한 건물 앞 사무라이 동상을 봤어요. 두 명인데 한 사람은 말을 타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부채를 들고 서 있어요. 풍채 당당하고 번쩍거리는 모습과 이름표가 실제 위인 같았습니다. 부채를 든 사람 밑에 한자로 풍신수길이라 적혀 있습니다.
알고 보니 그가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
임진왜란을 일으킨 나라의 원수입니다. 그 옆에 말 탄 지체 높은 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발탁하고 출세시켜 준 금수저 사무라이 온다 노부나가. 이 둘은 후에 에도시대를 연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일본의 3대 '영웅'으로 일컬어집니다. 그 '영웅들'이 모두 나고야가 연고지라는 데서 놀라면서도. 우리의 원수가 이곳의 영웅이라니, 이곳이 분명 내가 사는 곳과 다르긴 다르구나 생각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빈농의 자제로 태어나 일본 천황으로부터 쇼군으로 인정받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동상에서조차 말을 태워주지 않고, 스승 온다 노부나가와 신분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이 천출의 개념이 신기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에게는 천하게 태어났다는 게 도무지 상상하기 힘들어요.
가까운 듯 멀고, 비슷한 듯 다른 사람들.
적당히 멀고 적당히 다른 딸 셋의 여행지로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