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도 철학가도

발행글 취소에 대한 변명

by ㅈㅑㅇ


저번 주에 글을 발행했다가 취소했습니다.


댓글 달아준 감사한 분도 계셨는데 취소하니 댓글이 사라졌어요. 너무 송구합니다. 그 글에 제 마음이 점점 불편해져서 취소했습니다.


이런 글이었어요 :


철학이나 학문의 세계에 있는 사람보다, 산전수전 겪어가면서도 꿈꾸는 사람이 존경스럽다고. 두 발이 땅에서 떨어져 이데아를 동경하는 사람보다는, 땅에 두 발을 붙이고 인생의 때를 묻힌 채 꿈꿀 수 있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더 쉽다고.


어느 사업가와 어느 철학가 사례를 들면서. 철학이나 학문의 세계를 동경하지만, 내가 존중할 수 있는 사람은 좀 더 현실에 밀착된 사업가 쪽이라고요. 꿈을 꾸더라도 두 발이 땅에 붙어있는 쪽이 좋다고요.


그렇게 수요일쯤(?) 브런치 발행을 눌렀지요.

그런데 뭔가 마음이 한구석이 불편합디다.

다음날 수시로 글을 고쳤어요.

뭐가 불편한지 모른 채.


그러다 목요일쯤

오스카 와일드의 한 문장을 마주했습니다.





Fancy being cooped up in a horrid ship.



cooped up 하면 갇혀있는 걸 말한다고 합니다. coop이 닭장을 뜻하기도 하고요. 동사가 어딘가 생략된 것 같은 문장이지만, 문법적으로 말이 되는지는 따지기 어려워서 안 합니다. 느낌적 느낌으로 퉁칩니다.


fancy는 여기서 판타지 fantasy에 가깝죠. 저 문장은 <The Picture of Dorian Gray>에서 시빌 베인이라는 여자의 백일몽 부분에 나옵니다.


시빌 베인은 도리언 그레이와 사랑에 빠진(?) 연극배우입니다. 사랑이라 하기엔 많이 부족한 관계입니다만. 그녀의 남동생 제임스 베인이과 산책을 하면서 나누는 얘기 중 일부죠. 제임스 베인은 뱃사람이 되어 이제 영국을 떠나기 직전이며, 그녀는 그의 미래에 관한 이런저런 공상을 떠들어댑니다.


아주 터무니없고 극적입니다. 영국에서 배 타고 떠나서 폭풍을 만난다거나, 호주에 도착하여 금덩어리를 찾아낸다거나, 산적무리로부터 어떤 여자를 구해내는데 그 여자가 어마어마한 재산의 상속녀라는 등의 상상을, 장장 한글 2페이지와 영어 1페이지에 걸쳐 펼쳐놓습니다.


그러면서 “넌 뱃사람으로 남아선 안 돼, 뱃사람의 삶은 끔찍해, 배 위에서는 상상이 갇혀있잖아”라는 맥락의 말을 합니다. Fancy being cooped up in a horrid ship.


뱃사람의 삶은 수시로 생존을 위협받는데,

그런 바다 위 배에서 먹고사는 일이

상상보다 우선시될 수밖에요.

꿈은 제쳐둘 수밖에요.



Oh, no! A sailor's existence was dreadful.
Fancy being cooped up in a horrid ship,

with the hoarse, hump-backed waves trying to get in, and a black wind blowing the masts down, and tearing the sails into long screaming ribands!

P.57 Oscar Wilde <The Picture of Dorian Gray> Oxford


오, 안 돼! 뱃사람의 삶은 얼마나 끔찍한가. 곱사등같이 생긴 거친 파도가 집어삼킬 듯 몰려오고, 검은 바람이 돛대를 아래로 기울이며 돛을 갈기갈기 찢어 긴 비명을 내지르는 천 조각으로 너풀거리게 만드는 바다에서 어찌 아름다운 상상이 날개를 펼 수 있으랴.

P.106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윤희기 번역, 열린 책들



생존 중차대합니다. 먹고사는 일 중요합니다. 그리고 꿈도 중요합니다.


누군가는 시빌 베인처럼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하고, 어떤 사람은 좀 더 현실적인 꿈을 꾸겠죠. 누군가는 두 발이 땅에 떨어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땅에 딱 붙어있기도 하겠죠. 배 위는 땅 위보다 가혹한 현실일 테고요.


저는 땅에 딱 붙어있는 편이 존중하기 쉽다 했는데, 그게 마음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현현될 일 없는 꿈이 안타깝다고 했는데, 그게 마음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먹고사는 당면 과제를 거의 매일 마주하는 저 역시 어처구니없는 백일몽을 꿉니다. 가령 이 글이 다음 메인에 실린다던가, 써본 적도 없는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인세를 받으며 남은 인생 자유롭게 산다거나 하는, 말로 하기도 민망한 상상을 합니다. 먹고사는 문제에 치일수록 로또 가게를 기웃거리기도 하고요. 현현될 일 없는 꿈을 꾸는 것도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존중하기는 어려워도 필수불가결하달까요.


그러니까 '누구'는 현실과 동떨어지고 '누구'는 밀착되어 있다기보다, 누구라도 '어떤 때'는 현실과 동떨어지고 '어떤 때'는 밀착되는 것 아닐까요.


완벽하지 않으며, 수시로 삽질하는 인간 군상을 떠올려 봅니다. 생각에 대한 생각처럼 무용한 것들도 있고, 무용하지만 인간적인 것들도 있고, 인간적이지만 치밀하고 위대한 것들도 있겠죠.


그 사업가에게도 동경의 대상, 백일몽이 있을 테지요.

그 철학가에게도 당면한 현실, 먹고사는 문제가 있을 테지요.

철학가도 사업가도 생산자도 수호자도 지배자도 결국 사람이니까요.


발행을 누르기 전에, 글을 완성하기 전에, 좀 더 두고 보며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얄팍한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