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인간

가짜든 진짜든. 감동과 신념은 인간 종의 능력?

by ㅈㅑㅇ


출근 준비를 하는 아침.


창문 너머 소나무 가지에 사는 까치들 사이에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아주 시끄럽게 깍깍댄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다. 그렇다고 자세히 들여다볼 여유는 없다. 나는 옷을 마저 챙겨 입고, 아이들이 밥 먹은 식탁을 대충 정리하고, 차 열쇠와 전화기를 챙겨 출근했다.


운전을 하면서 생각했다.


여유가 있었다 한들, 그들 까치들의 삶에 끼어들진 않았을 것이다. 만약 까치 사회에 샤먼이 있어서 신과 소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개체가 있다면. 그리고 그 신이 혹시 어느 인간이라면. 그 종교는 성립될 수 있을까. 신의 세계는 그냥 존재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르는데, 어쩌다 한 번 개입하게 된 신은, 그러니까 그 인간은 얼마나 피곤할까.


까치는 까치의 생활이 있고 인간 개인은 각자의 생활이 있을 것인데, 열일 제쳐두고 까치에게 계속 잔소리하고 도와주며 참견할 수도 없잖은가. 아니 어떤 개인은 열일 제쳐두고 까치 사회를 최우선으로 살아갈 수 있으려나. 그렇다면 그 개인은 인간사회에는 부적응자일까. 어떤 경우든 이계로부터 계속 요청이 들어온다면 굉장히 귀찮을 것 같다.


이계의 샤먼은, 인간과 소통하는 그 까치 샤먼은 어떻게 동료들에게 신의 메시지를 전할까. 신의 메시지는 매우 띄엄띄엄 불규칙하며 신뢰도도 낮고 뜬금없을 텐데. 샤먼의 카리스마는 거기서 빛을 발할까. 보통의 까치들은 샤먼의 말을 믿으려 할까.


요즘 읽고 있는 <옥스퍼드 세계사>를 보면, 까치에게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이 있다면 가능할 것 같다.


"샤머니즘은 강자를 선지자와 현자로 대체했다."


옥스퍼드 세계사의 한 부분이다. 호미니드 사회, 호미닌 사회, 초기 호모 사피엔스 사회에는 지도자들이 있었다. 다른 유인원들로부터 유추하건대, 힘이 센 우두머리 남성이 통치했을 것이나 언젠가부터 변화가 일어났다. 선지자가 권한을 부여받고 카리스마가 완력을 제압하는 등 영적으로 재능 있는 이들이 육체적으로 강한 이들을 능가하게 되었다.


카리스마가 득세하면서 사람들은 감히 바다를 건넜다. 실제로 현재까지의 증거에 따르면 대양을 건너 전 지구로 확산된 것은 호모 사피엔스뿐이다. 도구, 항해 기술, 추위를 막아주는 옷감 등을 바탕으로 한 복잡한 언어. 그 언어로 지어진 공동의 이상. 좋게 말하면 사회적 맥락에서의 새로운 목표, 거칠게 말하면 공공의 뻥카. 호모 사피엔스 공동체는 빙하기가 끝날 때 부터 그런 게 통용되는 공동체였다는 걸로 이해된다.


일찍이 <걸리버 여행기>에서 조나단 스위프트가 지적한 인간 특징 중 거짓말은 정말 기가 막힌 묘사다. 다만 이 거짓말을 스스로 열성적으로 믿기도 한다는 점이, 스위프트가 간과한 부분 아닐까 싶다. 가스라이팅 범죄를 보면 도대체 어떻게 그런 말을 믿지 싶지만, 당사자들에겐 정말 절절했던 순간일 테니까. 믿다 뿐인가, 진심으로 감화되어 주변에 전파하는 사람도 있다.


여러 사람이 믿으면 힘이 생긴다.

힘은 또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마련.

그렇게 오래오래 믿음이 굳건해지고.

실체를 갖게 되는 것 아닐는지.


이렇게 보면 호모 사피엔스는 참 종교적 존재이다.


확인되지 않은 것을 확신하고, 느낌을 믿으며, 다른 사람의 동참을 유도할 수 있는 능력. 대단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아까 그 까치사회에는 샤먼이 없을 수도 있겠다. 까치들이 스스로 배를 만들어, 다른 까치들을 꼬셔서 큰 바다를 건너가진 않는 것 같으니까. 게다가 신일 수 있는 인간은, 적어도 그들 눈에 보이니까. 그들의 신은 인간이 아닌 다른 것이려나.


어쩌면 실제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는 마케팅도, 그런 인간의 종교적 특징에서 기인하는지도 모르겠다. <진격의 거인> 리바이 향수 판매링크를 보고 참 놀라웠다. 만화 속 등장인물 이름을 걸고 판매하는 향수라니. 이런 일은 부지기수다. 그게 특별한 경우는 아니지. 실제 물건이나 노래, 사람에 대해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의 성을 건설하며, 간혹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 공간에 들어가기도 하는 모습이. 이제, 인간 고유 종의 능력으로 보인다.


쉬지 않는 마케팅 권유 전화, 이치에 맞지 않는 비약이 심한 거짓말, 온갖 사이비 종교, 감동을 강요하는 영양제 및 화장품 판매 공동체, 나와 너를 지치게 하는 이런저런 근대의 산물이 다르게 보인다. 그것들은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이 현상들은 그 뿌리가 아주 깊을 수도 있겠다.




wu-yi-i-_goj7MLzI-unsplash.jpg Unsplash - wu yi




나는 감동시킨다. 고로 존재한다 ?

나는 감동한다. 고로 존재한다 ??

뻘 생각을 참 길게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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