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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ㅑㅇ Sep 10. 2023

Soma Holiday

<멋진 신세계> 휴일이냐 불행할 권리냐 그것이 문제로다


오늘은 휴일이다.


'라테는' 출근 직후 회사 커피 자판기 앞에서 서로의 휴일을 묻는 게 월요일 일상이었다. 그 자리의 위너는 금토일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거나 유명한 장소에서 역동적으로 놀고 마신 사람이었다. 집에서 책이나 TV를 봤다거나, 산책을 했다고 하면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많은 비용과 에너지를 쓸수록 주말을 알차고 멋지게 보낸 것으로 평가받았다.



요즘 휴일은 어떨까. 지금은 편안함과 행복이 불패 테마 같다. SNS에 업로드되는 사진들은 이 시대 지상과제 중 하나가 쾌적한 카페에서 편안함과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그 카페가 멀리 있어도 찾아간다. 집에서 씻지 않고 뒹굴거리는 편안함과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의 편안함은 격이 다르다. 여전히 비용과 멋진 휴일은 비례 관계에 있는 것도 같다.



엄청나게 더웠던 8월의 어느 휴일에

나는 엄지살롱에서 소마를 만들었다.



소마는 올더스 헉슬리의 1932년작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에 등장한다. 사실상 향정신성의약품에 가깝지만, 책 속에 언급되는 먹을 것은 소마가 거의 유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마의 주요 기능은 평정심을 유지토록 해주는 데에 있다. 언제라도 ‘휴일’을 누릴 수 있으나 술이나 마약처럼 부작용이 없다.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생각과 감정을 마비시키는 유쾌한 환각제. 미래의 언젠가 2,000명의 약학자들과 생화학자들이 보조금을 받아 발명했다. 소마는 국가가 보급한다. 사회의 실질적 안정을 위해.




원한다면 언제라도
현실로부터 떠나 휴식을 취하고,
두통이나 헛된 관념에 시달리지 않고

p.102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소담


Take a holiday
from reality whenever you like,
and come back without
so much as a headache
or a mythology.

p.46 <Brave New World> Aldous Huxely, Vintage




언뜻 프로포폴과 비슷해 보인다. 프로포폴은 마비시키는 약, 마약의 하나로 수면 내시경 검사 때 흔히 투여받는 물질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혜택을 받고 있지만 누군가는 이 약에 중독되어, 가짜 환자 행세를 하면서 처방을 애걸하기도 한단다. 그러다 과다투약으로 호흡중추가 아예 멈춰버리기도 한다.


현실은 편히 잠들 수 없는 격전지이지만, 프로포폴을 맞으면 한 잠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개운하다나. 그 간편한 개운함과 편안함이 프로포폴의 매력인가 보다. 짐작만 할 뿐이다.


모든 이로운 것에는 부작용이 수반된다. 프로포폴 과다투약으로 사망한 사례를 우리는 사회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만약 소마만큼 부작용 없는 프로포폴이 실재한다면? 그 물질은 우리 식단을 파고들겠지? Why not?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가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는 빨간 알약을 선택하는 플롯이 극적인 것은 그것이 흔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망각의 파란 알약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쉬운 게 현실이다.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굳이 그렇게 고생하나. 세상 뭐 별거 있간디.


소마는 간편하다.


1그램이면 열 가지 침울한 기분이 물러간다. 그리움을 극복하기 위해 운동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눈물 흘릴 필요도, 두려움에 대처하기 위해 신에게 봉사할 필요도 없다. 찝찝함에 대응하기 위해 굳이 내가 저지른 잘못을 복기하거나 곤란한 상황에 맞닥뜨릴 필요도 없다. 알약 하나면 끝. 깔끔.






만드는 것도 간단했다.



빨강머리 앤의 식탁처럼 재료 준비하느라 짐 가방을 끄는 부산을 떨 필요도 없고, 꽃이나 식탁을 장식하는 정성도 불필요하다. 불도 물도 필요 없다. 준비한 캡슐에 준비된 가루를 넣으면 완성. 캡슐은 인터넷에서 주문했고, 안에 채울 가루로 집에 있던 아로니아 가루와 유산균을 챙겼다.


어쩌다 혼자였다. 멤버들이 모이는 데 그날따라 시간이 걸렸다. 간단하니까 사람들을 기다려 굳이 소통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만들면 되었다. 하얀 빈 캡슐을 열고 안에 가루를 넣었다. 비타민 C가 풍부하다는 빨간 아로니아 캡슐을 먼저 넣어보고,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배설을 위한 유산균도 넣어봤다. 재료들이 다 쾌적한 인생을 위해 먹는 건강보조제다.


그래, 이게 다 쾌적하고 편안한 삶을 위한 것이다.


안정과 편안함에 더해 부족한 것 없이 풍족한 세상. 멋진 신세계와 우리 세상이 만나는 지점에 그 열망이 짙게 깔려있다.


멋진 신세계를 좀 더 들여다보자면.


그곳에서 신(God)은 물자가 풍부한 시대를 연 포드(자동차 회사 Ford 그 사람)이다. 풍요를 위해 지속적인 생산이 요구되며, 사회 유지 근간을 위해 소비가 매우 중요한 세상이다. 때문에 낡은 물건을 쓰거나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것은 반사회적 처사다. 여가 시간에도 소비는 계속되어야 한다.


생산 인력을 유지하기 위해 태아 때부터 특별 교육을 받은 노동자를 양성한다. 책이나 아름다운 것을 멀리하도록 세심하고 철저하게 디자인된 교육을 받았다. 양육과 교육은 국가기관에서 담당한다. 개인이 책임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소마의 발명에 이어 노쇠 현상도 극복했다. 사람들은 각종 보조제와 시술로 30대의 외모를 유지하다가 갑작스럽게 요양병원에서 죽음에 당도한다. 각종 피부과 시술, 태반 주사, 보조제, 비타민 등을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 모습과의 교집합에 소름이 끼친다.

 

그곳에는 이미 애착과 늙음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모두의 연인이 되고, 현재의 감각을 충분히 즐기는 동시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다. 노인은 제거되었고, 사색, 역사, 상실, 죽음, 불편한 진실은 무의미한 단어가 됐다. 죽음은 그저 인간 개체가 사회 구성원에게 필요한 화학성분 인으로 치환되는 과정일 뿐.


그러니까

이게 다 쾌적하고 안정적인 삶을 위한 것이었다.

모든 것을 쉽고 가볍게 만드는 것.

언제든 휴일을 누릴 수 있는 삶.

 

지금 우리가 추구하는 삶과 너무 닮았다.

설마 우리의 미래도 그러할까.


어쩌다 멋진 신세계를 경험한 '야만인 존 Savage John'이 소마 휴일을 거부하고 불행할 권리를 단호하게 요구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Alright, then,'
said the Savage defiantly,
 'I'm claiming the right to be unhappy.'

p.212 <Brave New World> Aldous Huxely, Vintage

통제관이 말했다. "우린 편안하게 일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사실상 당신은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셈이군요." 무스타파 몬드가 말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야만인이 도전적으로 말했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늙고 추악해지고 성 불능이 되는 권리와 매독과 암에 시달리는 권리와 이투성이가 되는 권리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아갈 권리와 장티푸스를 앓을 권리와 온갖 종류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할 권리는 물론이겠고요."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런 모든 것들을 요구합니다." 마침내 야만인이 말했다.

무스타파 몬드가 끄덕였다. "그렇다면 좋을대로 해요." 그가 말했다.



p.362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소담




휴일이란 단어는 본래 종교적 개념에서 출발했다.


휴일을 뜻하는 Holiday는 단어 그 자체로 성스러운 날이다. 태곳적부터 있던 단어는 아니고 기원 후에야 기록이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도 관리들의 휴일은 유교적으로 의미 있는 날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일요일을 따로 두진 않았고, 집안 제사가 있는 날 2~5일간 급가 즉 휴가를 받았다고 한다.


신념에 대한 보상, 혹은 신념의 실천을 위한 것이 휴일이었던 셈이다.


더위가 식어가는 9월의 어느 휴일,

나는 이런 생각의 늪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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