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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ㅑㅇ Aug 21. 2023

개츠비 데이지 치킨 맥주

<위대한 개츠비>의 식탁



개츠비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데이지는 톰과 뭔가를 상의하고 있다.

그들 식탁에는 식은 치킨과 에일이 있었다.

<위대한 개츠비> 뺑소니 사건이 일어난 밤이었다.


책 속 그날처럼 매우 더웠던 2023년 8월의 어느 여름날. 엄지살롱의 식탁에 톰과 데이지가 입도 대지 않았던 치맥, 치킨과 맥주를 차렸다.


이번 공유주방은 서울대입구역 인근 주택을 개조한 곳이었다. 대문을 지나 작은 마당을 통과해 2층으로 올라갔다. 다른 누군가의 집에 놀러 온 것 같았다. 오늘 엄지살롱은 이곳이다.




함께 책을 읽은 엄지들이 모두 모였다. 오늘은 쓸의 큰딸이 손님으로 함께 했다. 중학생 손님에게 <위대한 개츠비>는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책 속 음식을 함께 먹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게스트는 언제나 환영이다. 우리의 무게를 덜어주고, 다른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니까. 톰과 데이지의 치맥 식탁에도 손님이 있었다면 그들의 대처방법은 꽤 달랐을 것이다.


요리는 간단한 편이었다.


닭고기에 레몬즙, 소금, 버터, 마늘, 로즈메리를 버무려 오븐에 구우면 끝. 오븐에 다 들어가지 못한 닭은 프라이팬에 익혔다. 오늘 재료는 엄지 중 아지가 대부분 챙겨 왔다. 그녀가 향긋한 로즈메리를 다듬고 버터에 섞어 닭에 버무렸다.


오븐 온도가 올라가자 마늘까지 가세한 고소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프라이팬에서는 지글지글 닭 익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톰과 데이지를 생각했다. 이 맛과 소리가 들어오지 않을 상황이라니, 세상 심각하고 진지했구나 싶었다.


버터에 다듬은 로즈메리, 마늘을 섞어 닭과 버무렸다. 닭에는 소금 후추 레몬즙을 뿌려 두었다.



 

머틀의 목숨이 오갔고

윌슨의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톰과 데이지의 미래가 오가는 밤이었다.


개츠비는 밖에서 오래 서성였다. 그는 혹시나 데이지가 톰에게 해코지를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데이지가 사고를 내기 직전에 톰에게 개츠비와의 연인 관계를 시인했기 때문이다. 보디가드처럼 데이지 집 밖을 지켰다. 낌새가 이상하면 들어갈 작정이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그는 데이지 방의 불이 꺼진 후에야 집에 돌아갔다. 그리고 오지 않을 데이지의 전화를 기다렸다.


데이지는 난처했다. 개츠비가 톰과의 기억도 전부 부정하고 청산해야 한다 해서 곤란했고. 자동차 사고를 내서 무서웠다. 자신의 인생이 꼬일까 봐 불안했다. 그 상황에서 그녀는 깨달았다. 안하무인 톰 옆에서 개츠비와 연애하는 것은 괜찮지만, 톰을 아예 차단시키는 삶은 두렵다는 것을. 톰의 자산규모는 개츠비와도 차이가 컸다.


데이지가 사고로 죽인 여자는 톰의 내연녀 머틀. 데이지가 운전한 차는 개츠비의 차. 우연도 이런 우연이. 합이 맞아떨어지는 순간 톰과 데이지는 서로의 끝을 봤다. 술에 엉망으로 취하지 않고서도 자신들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밑바닥을 확인했다. 그리고 둘은 모종의 합의에 이른다. 사태가 잠잠해질 때까지 일단 멀리 도망가기로.



데이지와 톰이 식탁에 마주 앉아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식은 닭튀김과 두 병의 에일이 놓여 있었다. 그는 식탁 너머로 그녀에게 열심히 떠들어대고 있었고, 진지하게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감쌌다. 가끔씩 그녀가 그를 올려다보며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행복해 보이지는 않았다. 치킨과 에일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불행해 보인다고도 할 수 없었다. 그 장면에는 분명 자연스럽고 친밀한 분위기가 있었고, 누구든 그 장면을 보았다면 그들이 지금 함께 뭔가를 모의하는 중이라고 했을 것이다.

p.179 <위대한 개츠비>
F.스콧 츠제럴드, 문학동네



Daisy and Tom were
sitting opposite each other
at the kitchen table,
with a plate of
cold fried chicken
between them,
and two bottles of ale.

p.145 <The Great Gatsby>
F.Scott Fitzgerald, Scribner



비장한 밤이었다.

치킨은 차갑게 식었고,

연한 에일 맥주조차 남았다.

치킨은 버려졌을까? 개츠비처럼?





활기찬 오후였다.

치킨은 따뜻했고,

맥주는 술술 넘어갔다.

곁들인 복숭아와 허브가 상큼했다.

대여시간을 연장했고 감자튀김도 사왔다.

엄지들은 그날도 가볍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데이지 톰. 정치. 관념. 실생활. 제조업. 자전거. 한강. 종교. 술. 심포시온. 함께 마시다. 괴베클리 테페. 멋진 신세계. brave & endure. 소마. 마약. 술을 마시는 이유. 술자리에서 중요한 일을 의논한 경험. 작은 섬. 내 행동의 인과관계가 눈에 보인다면. 계층. 만족. 일본의 어느 집 대출 프로그램. 방학의 끝. 기본소득. 체면. 해외 생활. 팟캐스트. 두런두런. 하하하.



그날의 더위와 술기운이 아직 남아있다.

그래서 오늘이 사뿐하다.





그리고

그들처럼

걱정은 접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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