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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ㅑㅇ Oct 29. 2023

마케팅 피싱 사기

마음을 사는 일, 정말 그게 업이 되나요?


나는 중소 제조업체에서 일한다. 우리 회사는 물건을 만든다. 광고는 별로 하지 않는다. 실용적인 것과 자존심을 중시하는 사풍이 있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광고는 허상이고 쓸데없다는 관념을 사주가 갖고 있다. 그런 것에 신경 쓸 시간에 물건이나 제대로 만들면 된다는 주의.


근데 사무실로 걸려오는 전화와 팩스는 99.9% 광고다.


광고 내용은 '정부지원 태양광 패널이나 LED 조명을 설치'하라거나, '물건이나 서류 운송서비스' 또는 '인터넷 서비스 요금 안내'가 주류를 이룬다. 관심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광고전화와 팩스를 받으며 생각한다. 이게 돈이 되나? 업이 되나?


하루 종일 광고전단지를 만들거나 팩스를 보내는 그 혹은 그녀. 기약 없이 전화를 돌리는 누군가를 생각해 본다. 그렇게 일하고 얼마나 벌까. 생활은 되나. 전화 연결 건수에 따라 혹은 실제 계약 실행 건수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으려나. 실제 만남이나 계약이 실행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그들을 고용한 사람들도 생각해 본다. 이런 사업을 구상하고 실행하는 그 혹은 그녀는 누굴까.


걸려온 광고전화 사례를 복기해 봤다.



우선 호의를 베푼다. (마케팅)


우리 회사에 점심 도시락을 제공해주고 싶다고 했다. 대장암 진단 키트도 선물하고, 근로자 법정 의무교육도 해주겠다고 했다. 근로자 법정 의무교육은 사업장에서 반드시 일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하는 것들, 이를테면 성희롱에 대한 개념이나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개념과 법에 대한 것들이 있다. 보통 관련 부처 공식 홈페이지에 자료가 게시되어 있지만, 중소 제조업체에서는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그걸 알고 있다.


점심시간 10분이면 된다고 했다. 외부인을 극구 거부하는 사장님께 어떻게 허락을 얻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지극한 전화공세에 지쳤던가. 누군가 대장암 진단키트에 혹했던 것도 같고, 의무교육 자료를 제공해 주겠다는데 혹했던 것도 같다. 도시락은 생략하되 진단키트와 교육자료는 받기로 했다.


약속된 날 점심시간. 양복을 잘 차려입은 남자 둘이 컨테이너 사무실에 들어왔다. 바람잡이 겸해서 셋이 왔었던가. 야튼. 끽해야 5명 남짓 사람들이 오가는 외진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건장한 남정네들이 차트를 보여주며 우렁차게 프레젠테이션 하는 모습이... 정말 어색했다.


그들이 제공해 준 문서들은 근로자 법정의무교육 자료가 아니었다. 건강유지비용과 나이의 상관관계를 도표로 나타낸 것, 그리고 관련 보험상품 가입신청서였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유지비용이 많이 드므로 미리미리 보험에 가입하라 했다. 미팅이 끝날 때 알았다, 이들을 고용한 곳이 I은행이라는 것을. 그들이 발표 말미에 내민 것은 I은행 보험상품 가입신청서였다. 열성적인 프레젠테이션에 미안해서라도 하나는 해주는 게 이 바닥 보통의 정서다. 그래서 그때 누가 가입해 줬던가. 잘 기억나진 않는다.


언젠가는 연구소 설립을 도와준다며 접근한 사람들이 있었다. 제조업체에 '연구소'가 있으면 은행평가나 정책자금 지원 때 유리하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왔다. 과거 크린사업장이나 벤처기업 때처럼 눈먼 돈이 연구소에 있는데 그걸 왜 무시하고 애국자처럼 사냐는 조롱 섞인 조언도 꽤 들어왔다. 외부의 행정적 도움이나 가식을 최선을 다해 외면하는 사주 특성상 그런 조언이 계속 무시 돼왔으나. 내부로부터 세금절약에 연구소가 큰 도움이 된다는 얘기가 불거지면서 전격 컨설팅 실시, 연구소는 못해도 '연구부서'를 설립했다.


연구부서 설립에 필요한 서류, 사진, 지원방법 등을 밀착 컨설팅해 준 이가 요구한 것은 단 하나. K은행 보험상품 가입이다. 종착역은 보험. 이 광고전화도 보험을 파는 금융회사의 후원을 받아 이뤄진 것이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보험상품이 그렇게 돈이 되나? 생각해 보자. 매달 수년간 10~20만 원씩 붓는다 생각하면, 3년 유지 시 360~720만 원, 그 가운데 실제 계약자가 가져가는 돈이 없을 경우 그것은 보험회사 수익이 되고, 그 가운데 어느 정도를 연구소 컨설팅업체가 가져가나? 보험회사가 컨설팅업체에 월급을 줘가며 운영하나? 내가 그 기간 보험 대신 적금을 든다면, 그것이 더 나을 수도 있는 건가? 내가 아플 확률은 생각보다 적은 건가? 아니 내가 아파서 보험금을 탈 확률은 생각보다 적은 건가?



고압적인 자세로 접근하기도 한다. (피싱)


전화를 받아보면, 고용노동부 단속이 임박했다며 점검을 나오겠단다. 얼핏 들으면 고용노동부에서 단속이 나온다는 것 같지만, 다시 들으면 지금 전화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싶다. 되짚어 물어보면, 법정 의무교육 제대로 하고 있는지 컨설팅 차원에서 점검을 나오겠단다. 이 말을 통역하자면 '행정부 점검이 아니라 사설업체 컨설팅 나오겠다'는 말이다.


처음 몇 통은 당황해서 받았지만. 몇 번 받아보니 이젠 알 거 다 안다는 말투로 대답한다. "이미 다 실시했고 저희 관리해 주는 업체가 따로 있다"라고 하면 전화를 훅 끊는다. 물론 진짜 행정부 점검 나오는 경우도 있다. 진짜 소방서에서 점검일정 잡으려고 전화했을 때 광고인줄 알고 콧방귀 뀌다가 매우 당황스러웠던 적도 있다.


무슨 경영연구소 실장이라며 당당하게 사장님과 통화하겠다는 사람도 꽤 있었다. 전화기 너머 어떤 점잖은 아저씨는 우리 회사 바이어 이름을 대며 "거래 잘하고 계시죠?"라며 이야기를 시작한 적도 있었다. 몇 마디 주고받으니 좀 이상해서 전화는 유야무야 마무리되었고, 아무도 무언가 엉뚱한 것을 들고 찾아오진 않았다.


고압적인 전화는 유행이 지나긴 했다. 그 전화들의 후원자는 누구였는지 모르겠다. 짐작컨대 그 역시 금융을 다루는 업체겠지. 금융의 부가가치가 그 정도가 되나.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노고를 퉁칠 수 있을 만큼?

  


최근에는 양상이 좀 달라졌다. (사기) 


요즘에는 부탁하는 전화가 유행한다. 그런데 명백한 거짓말로 부탁을 한다. 전화 건너편의 그 또는 그녀는 우리 회사 거래업체 이름을 대며 그곳의 자금담당이라며 자신의 이름도 밝힌다. 그리고 자금 융통을 위해 S은행 대출을 일으키는데, S은행 방문 시 협조를 부탁한단다. 거래업체 은행 업무 협조사항이라면 들어주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보통 업체 간 연락채널이 따로 있는데, 사무실 대표전화로 처음 듣는 사람이 전화하다니 좀 요상하다.


해당 거래업체에 전화해 확인해 보면. 그런 사람 없고 주거래 은행도 다르단다. 그쯤 되면 아까의 그 번호는 연락이 안 된다. 조직 규모가 큰 회사에서는 영업-자금업무 부처 간 확인 없이 일이 성사되기도 하는 것인가. 모르겠다. 거꾸로 우리 회사 자금담당이라는 가상의 누군가가 거래처에 전화해 부탁한 경우도 있었다. 누군가 그 부탁을 들어주면, 이번엔 S은행 보험 혹은 금융상품가입이 기다렸을까.



Unsplash - Fabian Blank






피곤하다. 전화를 받는 사람도 피곤한데,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피곤할까. 일은 일이라며 스트레스받지 않고 자기 분열을 겪지 않고 있을까. 가끔 묻고 싶어 진다. 당신 괜찮은가요?



나중에 우연히 알게 됐다. 중소 제조업체들 뿐 아니라 수많은 자영업자, 동네 가게들도 그렇게 광고 전화를 많이 받는단다. 광고 전화의 대부분은 광고하라는 광고. 간혹 관련 물품을 영업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인터넷이든 앱, 플랫폼을 통해 사업체를 광고하라는 내용이란다. 강의 플랫폼이나 펀딩 앱에도 광고 압박이 있다고 하니, 뭐. 그야말로 광고는 서비스산업의 주요 축임에 틀림없다.



새삼 주변에 수두룩한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화려하고 기발한 티브이 광고는 말할 것도 없다. 손 안의 인스타그램에도. 출근하는 버스에도. 집으로 가는 승강기에도. 카톡에도, 티맵 내비게이션에도 광고가 있다. 서로 잘 알지 못해도. 나의 마음을 얻으려 이토록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새삼스럽다. 사람들이 그걸 업으로 삼고 하루하루를 꾸려나간다는 사실은 더 새삼스럽다.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허상 같은 서비스 산업은 더없이 놀랍다.  



마케팅도. 사기도. 피싱도. 합법이든. 불법이든. 다. 사람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나의 마음을 화폐가치로 보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주고 싶진 않은데 거참. 이렇게 꽉 막힌 사람이 되고, 꼰대가 되어 가는 걸까.



1830년대 소설 <고리오 영감> 속 랑제 공작부인의 선견지명을 되새겨본다.


"우리 마음은 보물이죠.

그걸 단번에 비워버리면 파산하고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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