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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ㅑㅇ Oct 14. 2023

Oranges and Lemons

태국 사는 일본인 K 씨에게 전하고 싶은 말


영국 전래동요 가운데 런던의 오래된 교회 종들이 울릴 때 주고받는 이야기가 있다. 조지오웰 <1984>에 등장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주인공 윈스턴이 궁금해하던, 단절된, 오랜 유산 가운데 하나. 노래는 아름답다.


https://www.youtube.com/watch?v=4bc63sqKYZ4



오렌지와 레몬.

그대는 내게 5 파딩을 빚졌지.

언제 갚을 겁니까?

내가 부자가 되면요.

그게 언제일까요?

내가 나이가 들면요.


태국 방콕에 사는 일본인 K 씨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이 노래에 있다. 이제 와서 말하기 너무 치사한 감이 드는 말. 그러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처럼 한 번쯤 쏴주고 싶었던 말 : 언제 갚으실 겁니까?








K 씨는 일본인이다. 방콕에 산다. 태국에는 일본 기업인이 많다. 태국은 외국인 자본만으로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기에 태국인과 합작하여 세우는 회사들이 많다. K 씨는 일본계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태국인 U 씨와 함께 F사를 차렸다. U시는 물류업무 출신이었다. 에어컨 부품들과 물류업무를 취급하는 회사였다.


내가 일하는 회사는 작다. 중소 제조업체로 에어컨에 필요한 소재를 만든다. K 씨의 F사는 우리 회사가 만든 물건을 수입했다. 그 물건들은 일본 업체 이름을 달고 팔리는 에어컨에 공급됐다. 결제 잘 되기로 유명한 업체에 공급했다. 일본이나 동남아 어딘가에서 맞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우리 회사 사람들의 노고가 조금 묻어있었을 수 있다.   


하긴. 이젠 하도 오래돼서 그때 우리가 태국에 공급한 소재가 쓰인 에어컨은 다른 것으로 교체됐을 가능성이 높겠다. F사가 우리 회사 물건을 가져간 것은 대략 2010~2015년 전후였다. F사는 물건을 가져가고 1~3개월 후에 대금을 결제했다. 그러다 문제의 2014년 언젠가부터 결제가 밀리기 시작했다. 물건은 계속 나가는 중이었다.


우리 회사 사장님은 양 사가 서로 잘 아는 사이이고, 그간 거래해 온 관계가 있으므로, 믿고 기다리셨다. 미수금액이 한화로 약 5억 원에 달하자 (USD 390,164.90) 회사 운영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신뢰에만 기대기 어려운 상황. 이때 K 씨의 회신은 당분간 돈이 묶여 줄 수 없다였다.


돈이 묶였다니? 그의 설명에 따르면 몰디브와 중동 어느 국가의 극비 프로젝트에 한화 약 5억 원 이상의 자금을 투자했다는 것. 새로운 사업에 투자하는데 결제 대금도 그리로 들어갔다는 것. 그래서 우리한테 지불할 돈이 없단다. 스미마센. 너무너무 미안하단다.


K 씨는 물건은 계속 공급해 달라고 했다. 결제 확실히 되는 일본 업체 공급분에 한해서, 그건 확실히 결제하겠다고. 정말 그 건들에 대해 결제가 이뤄지긴 했다. 밀린 금액은 그대로 둔 채. 거래는 세네 번 이뤄지고 멈췄다. 이후 거래는 없었다. 그게 2014년쯤의 일이다.


돌이켜보면 K씨도 어처구니없지만 우리 사장님도 참 비범했다. K 씨가 투자한 프로젝트의 성공을 빌어주며, 이왕 이렇게 된 거 너무 어렵지만 그 프로젝트 성공해서 우리 회사에 투자하라고 하셨다. 당시 사장님은 제조부문의 해외 진출을 구상하고 있긴 했다. 그의 해외 진출 욕망이 그렇게 맞아떨어졌다.


그래도 그렇지. 꿈꿀 수 있는 사장님들의 세계는 가끔 상식을 벗어난다.


평범한 나는 당장 무역보험공사에 사고접수하고 일부라도 회수하고 싶었다. 채권추심 업체를 찾아보니 수수료가 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실무자 입장에서 가만 앉아서 기다리는 것은 상식이 아니었다. 추심은 미수 발생 3년 이내 실시해야 가능성이 그나마 있다. 미안한 말이지만, 혹시 돈을 받지 못하더라도 F사에 어떤 식으로든 생채기를 내고 싶었다. 국제 추심업체에 미수업체로 등록시켜 그놈의 극비 프로젝트에 지장을 주고 싶었다. 그게 지장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K 씨, K상은 투자한 프로젝트에 지장이 생길 것 같으면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주지 않았을까.


대금 지급이 안된 물품을 만드는데 쓰인 원자재 값이 대략 5억 원. 물품대금 약 5억 원. 어이없지만 제조업의 현실이다. 물품대금의 95% 이상이 제조비용이다. 특별한 부가가치를 지니지 않는, 소모자재는 부가가치보다는 수량으로 수익을 낸다. 일을 하기 위해 일을 하는 수준. 가끔 사장님은 왜 이 자본을 들여 임대나 금융업을 하지 않고 제조업을 하고 있을까 싶을 때가 있다. 그 덕에 나와 우리 회사 사람들이 먹고살고 있긴 하지만. 야튼. 물품 제조를 위해 일으킨 대출비용은 그대로 우리 회사가 떠안았다.






뭐 옆에서 보니,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아니 사실 살다 보면, 손해를 볼 때도 있고 이익을 볼 때도 있기 마련이다.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법. 그러나 이 5억여 원의 자금은 우리 회사 자금이 타이트해지면 항상 어김없이 생각난다.


세상에 본래 돈 떼먹는 사람은 없다고 들었다. 다 상황이 안 좋아서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우리 회사도 마찬가지다. 결제에 세상 깨끗하게 대응하고 있지만, 자금 사정이 안 좋아질 때에는 답이 없다. 사실 요즘 그러하다. 결제해주고 싶어도 못해주는 미안한 마음, 괴로운 마음 가득이다. 아직까지 이런 악성 미수를 넘겨준 사례는 없지만 말이다.


대금 지불은 물론 지금까지 이뤄지고 있지 않다. 이제는 10주년 기념파티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극비 프로젝트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모르겠다. K 씨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꼭 갚겠다고 했는데. 그 말을 안 지킨 것 기억하고 있을까. 기억을 지우고 잘 살고 있을까.


아마도 그렇겠지.


솔직히 이제 그가 대금을 지급할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모두의 건강을 위해 훨씬 득 되는 일이다. 이렇게 끄적이기 시작한 것도 그 마음을 정리하고, 소심하게나마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뒷담화를 글로 쓰면서 풀다 보니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 볼 여유가 생긴다. 그가 짠 하고 대금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를 보내며, 신의를 지키는 모습을. 한번 상상하고. 쓴웃음 지어본다.







Oranges and lemons,

Say the bells of St.Clement's.


You owe me five farthings,

Say the bells of St.Martin's.


When will you pay me?

Say the bells at Old Bailey.


When I grow rich,

Say the bells at Shoreditch.


When will that be?

Say the bells of Stepney.


I do not know,

Says the great bell at Bow.


Here comes a candle to light you to bed,

And here comes a chopper to chop off your head!

Chip chop chip chop the last man is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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