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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ㅈㅑㅇ Jan 07. 2024

그의 이름은

<Frankenstein> 어쩌면 프랑켄슈타인?


연말에 <프랑켄슈타인>을 들고 남국의 바다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가족 여행 떠나기 전, 공항에서 4인 가족의 비행기표를 발권하려는 찰나. 내 여권이 없음을 깨달았다. 가까운 택시로 달려가 차로 1시간 거리인 집까지 왕복을 의뢰했다. 목요일 퇴근시간이라 51% 포기했었으나, 발권 시간 연장과 택시기사님의 신기에 가까운 운전으로 아슬아슬하게 도착. 가까스로 표를 끊어 다녀왔다. 기사님께 박수드리고 싶었다. 나와 가족의 불안을 떠안고 운전해 주신 너무 감사한 분. 뭐. 뒷자리에서 혼자 남겨져 자유의 몸이 될 가능성을 내심 타진해보기도 했지만, 가족과 함께한 특별한 경험을 무엇과 바꿀 수 있을까. 고마운 분, 그의 이름은 박*수이다.


극적인 여행에 함께한 책 <프랑켄슈타인>은 원서모임에서 최근 두 달 동안 읽어왔다. 12월까지 마무리를 했어야 하는데 뒷부분으로 가면서 인물들이 많이 죽어나가고 답답해서 손이 잘 안 갔더랬다. 영화로 치면 두 주인공 사이의 파괴적 브로맨스를 다루는 누아르랄까.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해변, 프랑스 에비앙, 스위스 알프스의 산과 호수 풍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복수추격전. 오로지 둘 만 남을 때까지 서로의 소중한 사람들을 차근차근 죄다 없애버리는, 아름답지만 잔인하고 처절한 이미지가 연상됐다.



이야기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의 이름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다.



그는 창조자이다. <프랑켄슈타인>하면 흔히 떠올리는 흉측한 초록 괴물을 만들었다. (실상 책에서는 초록색보다는 누런색에 가깝게 묘사됐다.) 빅터는 제네바의 괜찮은 집안 장남으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안정되고 평온한 가정에서 자라났다. 어려서 한 때 연금술에 빠져들었고, 커서는 자연과학에 몰입해 생명을 창조하는 성과를 이룬다. 그러나 막상 완성된 생명체의 흉측한 모습에 놀라, 도망가서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끙끙 앓는다. 자신의 섬세한 감정에 심하게 휘둘리는 대책 없는 로맨티시스트. 책 말미에 자신의 피조물에 의해 거의 모든 것을 잃고 북극으로 그를 쫓아간다. Victor 빅터는 정복자이자 승리자이지만 사실상 스스로의 과도한 열정과 감정의 희생자 Victim이 된다.



다른 한 명은 이름 없는 피조물이다. 빅터의 크리처, 피조물, 괴물, 악마, 노예, 희생자이면서 주인, 통치자 (실제로 책 속에서 피조물을 호칭하는 단어들이다). 어쩜 자식이나 아들, 형제란 말만 피해 갔다. 사람으로 치자면, 그의 이름도 분명 프랑켄슈타인이었을 것이다. 빅터가 생명체 만드는 일에 몰입해서 사체들로부터 부분을 모아 형체를 만들고 생명을 불어넣은 사생아. 사유하는 선한 존재로 태어났으나 그 모습이 너무나 끔찍했다. 스스로도 강물에 비친 모습을 보고도 놀라 움찔했다. 신이 아담을 만들 때 스스로의 좋은 점을 본 따 만들어 신의 기쁨이 되었다던데 그는 인간의 끔찍한 모습만 골라 담았다.



'나'는 당신의 아담이 되어야 하건만 타락한 천사가 되어,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되었다.



I ought to be thy Adam,
but I am rather the fallen angel,
whom thou drivest from joy
for no misdeed.
Everywhere I see bliss,
from which I alone am irrevocably
excluded.


(p.103 피조물이 창조자 빅터에게)



피조물. 그가 원한 것은 오로지 하나의 링크였다. 누군가와 상호작용 하고 싶었다. 사람과 어울리고 싶었다. 요람에서부터 버림받고, 길 가다 만난 모두로부터 적대적 반응을 받은 그는 어느 독일의 변두리 오두막에 몰래 정착했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추방된 오두막 식구들 옆에 기거하면서 그는 인, 의, 예, 지를 습득했다. 피조물은 그 관계망에 너무나 소속되고 싶었으나, 그 끔찍한 모습 때문에 그들로부터도 내쳐진다. 창조자에게 똑같이 추악한 이브를 만들어줄 것을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이브의 자유의지와 피조물의 심미안을 감안했을 때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결국 어느 관계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의 이름은 계속 빈칸이다.



My protectors had departed, and had broken the only link that held me to the world.

(p.140 오두막 식구들로부터 버림받은 후 피조물의 이야기)




이름은 누군가 불러주는 것. 링크, 관계의 기초이다. 인간은 사람 사이에 있어서 인간이다. 인간 관계망의 처음은 보통 부모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로부터 시작된다. 이름도 보통은 부모로부터 받는다. 피조물은 하나의 존재로서 그저 부모를 부모라 부르고 싶었을 뿐일 텐데, 부모로부터 관심을 받고 싶었을 뿐일 텐데. 부모 격인 빅터는 피조물이 문제아 중의 문제아라고만 생각했다. 피조물이 인류를 파괴할 거라고 믿어 북극까지 그를 쫓아갔지만, 실상 빅터가 죽자 슬퍼하고 한탄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하겠다며 사라졌는데 말이다. 빅터가 피조물을 프랑켄슈타인으로 인정해 줬다면. 아들은 아니어도 형제로 알아 줬다면 어땠을까.


1881년 <프랑켄슈타인>은 환상 소설의 원조.

흉측한 피조물과 그 이름에 관한 이야기들은 이후에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1886년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의 기이한 사례>에서 지킬박사는 우연의 약으로 변신한 자신의 모습에 '하이드'라는 이름과 전 재산을 줬다. 지킬은 하이드가 어느 정도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해 줬지만, 이름 덕에 숨어 지내야만 하는 기구한 운명을 지니게 했다. 그러나 어디 피조물이 가만히 있나. 그 둘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좀 더 이상적인 예는 1968년 <어스시의 마법사>에 나온다. 주인공 새매는 젊은 시절 방종으로 저 세상으로부터 공포스러운 그림자를 꺼낸다. 이름도 형체도 없는 그 그림자는 새매를 쫓고, 서로 쫓고 쫓기는 관계에 놓인다. 주인공은 먼바다까지 그림자를 추격해 마침내 마주한다. 그리고 그림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다. 끔찍하고 두려운 모습을 한 자신의 일부를 인정해 줌으로써 스스로를 완성시키고, 위대한 마법사의 길을 걸었다.


나만 제외되어 있다고 호소하던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 실제 가족이 없어봐서 더 좋아 보였을 테지만. 얽히고설킨 인간관계 망 속에 그렇게나 포함되고 싶었던. 이름 불리고 싶었던. 피조물의 이름을 불러본다. 프랑켄슈타인. 스핀오프 한 편을  쓴다면 그에게 프랑켄슈타인이란 이름을 부여하고, 친구를 갈망하던 북극 항해자 월턴과 독특한 우정을 나눌 수 있도록 하고 싶다.






2023년 연말 택시를 타고 깜깜한 바다 위 인천대교를 건너던 때. 박*수 기사님이 전속력 질주를 하던 그때, 나는 링크에 대해 생각했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 시간이었고, 그래서 차가 밀리는 구간이 있었다. 이렇게 항공권 발권을 못하면 나 역시 집으로 돌아가는 행렬에 합류하겠지만. 그곳은 가족이 떠나 있는 동안 진짜 집이 아니겠구나. 지금 택시가 달려가는 곳에 있는 그 사람들, 때로 벗어나고 싶은 그 사람들이 진짜 집이구나. 뭐 그런.



빅터가 피조물에게 프랑켄슈타인이란 이름을 인정해 줬더라면. 그들은 어쩌면 북극의 바다 얼음 위가 아니라 남국의 바다를 여행했을지도 모를 일. 내가 가족들과 함께 한 그 바다를 다녀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Unsplash - Joana Cordeiro Ferrei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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