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것을 대하는 하찮은 생각
주말에 속초에 다녀왔다.
따뜻하고 맑은 날씨였고.
눈 내린 설악산을 봤다.
낮. 속초 고성 어디를 가도 산이 거기 있었다.
밤. 쌓인 눈이 푸르스름하게 빛났다.
산. 항상 거기 그렇게 있었다.
가족들과
주말을 보내고
평일을 준비하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거대한 저 산을 넘어갈 수 있을까.
말도 안 되는 걱정과 압박감이 들었다.
아주 아주 오래전부터
저 산을 넘어 다녔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산 너머를 꿈꾸고 실행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저기에 도로를 놓고 건물을 지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난 역시
산의 위용에 대해 끄적이거나
풍류 즐기는 것만 할 수 있는 쪽이지만.
딱 그 정도 짬인 것 같지만.
저 산을 넘어가 뭔가 뜻을 이루거나
광활한 바다를 건너가거나
도로를 건설하거나
배를 만들거나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주변에
병풍처럼 서있다.
저 눈 쌓인 거대한 설악산처럼.
손에 잡히는 실체, 하드웨어를 만들거나
거대한 구조물이 돼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저 산을 어떻게 넘어간담
한없이 작은 나를 보며
위축됐더랬다.
뭐. 집엔 잘 돌아왔다
누군가 만들어둔 자동차를 타고
누군가 놓아둔 도로와 터널과 다리를 지나
누군가 지어둔 건물의 집으로 돌아왔다
누군가의 덕으로 잘 넘어왔다
내가 한 일은?
운전을 했고 기록을 했다…!
나는 소프트웨어.
하드웨어는 못 돼도.
거대한 산은 못 돼도.
나그네는 될 수 있을지도.
어느 몸뚱이의 등뼈나 심장은 될 수 없어도.
장내 미생물은 될 수 있을 것도 같다.